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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주민-기업 ‘협업과 상생’ 광산 도시 키루나 통째로 옮긴다

입력
2016.06.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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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국립기술혁신청 직원들이 회의실에 모여 지원자금을 신청한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남상욱 기자
스웨덴 국립기술혁신청 직원들이 회의실에 모여 지원자금을 신청한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남상욱 기자

지난달 25일 오전 스웨덴 스톡홀름 국립기술혁신청(VINNOVA) 사무실. 노트북 등 개인 소지품을 든 직원들이 이 곳 저 곳 빈 방을 옮겨가며 자유롭게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 중 한 무리의 직원들은 사무실 안 탁자에 모여 열띤 토론 중이었다. 호아킴 아펠키스트 국제협력국장은 “지금 이 곳에서는 북부의 광산도시 키루나(Kiruna)를 옮기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면적 16㎢의 도시 하나를 통째로 들어 동쪽 33㎞ 떨어진 곳으로 옮기고 전혀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유례 없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도시를 옮겨라” 초대형 도시 이전 프로젝트

국가 차원의 혁신으로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스웨덴은 한국이 가야 할 길을 몇 발짝 앞서 걷고 있는 중이다. 조선업 등 불황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닻을 먼저 올렸고, 10여년 전에 시작된 산업개편과 구조조정은 이미 성과를 거두고 있는 중이다. 2002년 세계 최대의 조선소 크레인을 울산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아 눈물을 흘리던 도시 말뫼는 ‘에코시티’로 재탄생했다. 수도 스톡홀름 인근에는 쇠퇴한 공업지역에서 최고의 주거신도시로 탈바꿈한 함마르비가 있고, 디자인시티로 거듭난 예테보리도 있다.

변신의 절정은 바로 작은 도시 키루나다. 인구 2만3,000명의 도시를 완전히 처음부터 재창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건설ㆍ토목은 물론, 도시의 기존 산업을 완전히 구조조정하고, 앞으로 이 도시가 먹고 살 신산업을 구상하는 초대형 사업이 지금 진행 중이다.

키루나 이전 작전은 도시의 자랑인 철광석 광산 때문에 시작됐다. 북극권 한계선에서 145Km 떨어진 인구 2만3,000명 정도의 최북단 도시인 키루나는 세계 최대의 철광석 광산으로 잘 알려진 곳. 하지만 갱도가 깊어질수록 땅에 금이 가고, 지반이 침하되는 일이 발생했다. “광산이 도시를 삼킬 것”이라며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결국 광산 운영 기업과 시당국, 주민이 참여하는 대책위원회가 구성됐고, 수 차례 공청회를 통한 논의 끝에 도시 이전 결론이 내려졌다. 스웨덴 정부는 곧바로 기술혁신청에 도시 이전 프로젝트를 맡겼다. 기술혁신청은 스웨덴 내 스타트업과 같은 개인 창업이나 대학 연구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해주는 역할과 함께 도시재생 사업과 같은 공공프로젝트를 전담해 맡고 있는 공공기관. “새로운, 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었다.

기술혁신청은 광산을 운영하는 국영광산회사(LKAB)와 함께 이주를 위한 아이디어를 공개 입찰에 붙였다. 대학 등 관련 전문가들과 몇 년에 걸쳐 토론도 했다. 지난한 과정을 통해 ‘키루나 포에버(Kiruna 4 ever) 프로젝트’가 마침내 탄생했다. 도시재생 등 관련 연구소 40여 곳, LKAB 등 대·중소기업 15곳이 참여, 도시 이전 사업이 완료되는 2033년까지 50억크로나(약 7,000억원) 정도의 자금이 투입되는 거대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혁신은 협력과 상생에서 나온다

아펠키스트 국장은 “키루나 프로젝트에는 스웨덴의 미래를 향한 도전에 중요한 키워드, 협업(Cooperation)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했다. 참여 연구소를 통해 영하권의 날씨를 고려, 거주민 체온으로 집 온도를 올리고, 도시의 역사를 살리기 위한 철도역과 시청 등은 그대로 분해해 새 도시로 옮기는 등 여러 아이디어가 채택돼 상당 부분의 청사진이 마련된 상태다. 기존 도시는 관광 산업으로 재편해 복합 리조트 등으로 개발하는 대신 앞으로 프로젝트를 통해 신도시의 적절한 먹거리 산업 발굴도 찾아나갈 예정이다. 이 모든 과정이 연구소, 대·중소기업, 지역 주민, 정부가 맞댄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혁신이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혁신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연구소에서는 아이디어를 내고 기업에서는 이를 어떻게 산업화를 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고, 정부는 뒤에서 이를 지원하는 등 모든 주체가 함께 해야 혁신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스웨덴은 구조조정 및 산업개혁 과정에서 ‘협력과 상생’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연구개발(R&D) 분야에서 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도 R&D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술혁신청에서만 매년 7,000건 가량의 연구개발 관련 프로젝트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그 성과가 투자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는 반성이 이어졌다. 이전에는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특정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결과물을 얻어낸 뒤 기업 등을 통해 산업화나 상업화에 나섰다면, 지금은 애초에 프로젝트 구상 때부터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한다는 얘기다.

김은성 코트라 스톡홀름 무역관장은 “스웨덴도 과거에는 특정 기업, 특정 산업에 집중 투자를 한 적이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전체 산업에서 그들이 마음껏 경쟁하고 고민한 결과물의 성과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협력과 상생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톡홀름=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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