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성소수자 축제인 퀴어문화축제가 올해로 17회째를 맞았다. 2000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제1회 퀴어문화축제에는 50여명이 퍼레이드에 참가했지만 이제는 퍼레이드에만 수천명이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퀴어문화축제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보수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동성애 혐오 움직임도 커져갔다. 이들은 초기에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소극적 반대 움직임을 보이다 2007년 이후 성별, 장애, 병력, 학력, 성적지향 등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차별금지법이 중점 의제로 떠오르자 퀴어문화축제에 대항하는 맞불 집회, 퍼레이드 방해 등 적극적인 반대 집단 행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여성 혐오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과 혐오 범죄에 대한 논의가 한층 더 활발해진 상황이다. 올해 퀴어문화축제의 공식 슬로건은 ‘Queer I AM : 우리 존재 파이팅!’. 주최측은 공식 트위터계정에 이번 슬로건과 관련 ‘한국 사회에 빠르게 퍼지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에 굽히지 않고 싸우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기독교 보수 단체 및 시민단체들이 맞불 집회를 예고한 가운데, 지난 몇 년간 퀴어문화축제가 거쳐온 성소수자 혐오세력과의 갈등 순간들을 정리했다.
2012년 : ‘동성애자 차별금지’ 현수막 갈등
‘서울시민 중 누군가는 성소수자입니다. 모든 국민은 성적지향으로 인해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갖습니다’ 2012년 5월 서울시 종로구에 2곳에 걸린 현수막의 내용이다. 동성애자 이계덕씨가 서울시내 12개 자치구를 상대로 ‘동성애 차별금지 광고 게첨’을 진행한 가운데 종로구에서 최초로 현수막 걸기를 허가한 것이다.
당시 2011년 보궐선거로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성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퀴어문화축제 주최측은 평소 동성애 인권운동에 우호적이었던 박 시장을 이번 축제에 초청하기도 했다. 서울시 역시 정보공개 청구에서 “모든 시민은 평등과 차별금지를 명시한 헌법과 성적지향 등 구체적 차별금지 대상을 명시한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에 의해 부당하게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서울시는 이러한 법 규범을 존중하고 있으며 앞으로 성소수자를 포함한 서울시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보수 기독교 단체 및 시민단체들은 이에 성명서로 맞섰다. 이들은 성명발표를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소수의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왜곡된 차별 논리를 받아들여 동성애 광고를 시내 버스는 물론 공공 게시물로 설치하는 것을 허락했다”며 “지금 시행하고 있는 정책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2012년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도 성소수자 혐오는 주요 주제로 등장했다. 퀴어문화축제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뛰는 혐오, 나는 인권 성소수자 혐오, 공격 넘어서기 좌담회’를 개최했다.
2013년 : 전화항의 폭탄으로 또 다시 멀어진 차별금지법
2013년 4월 18일, 당시 민주통합당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은 차별금지법안 발의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그 해 2월 두 의원이 각각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후 기독교 보수 단체들의 전화 공세가 의정 업무 자체를 마비시켰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 반대 1,000만명 서명운동’을 진행했고, 의원실에 항의 전화를 걸었다.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의원들뿐만 아니라 법안에 서명한 의원들까지 항의전화에 시달렸다.
결국 두 의원은 “차별금지법안의 취지에 대해 지나친 왜곡과 곡해가 가해져 합리적 토론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법안 발의를 철회했다. 2007년 첫 제정 시도 후 여러 진보 성향 의원들이 발의해 온 차별금지법은 기독교 보수 단체들의 반대로 지금까지 발의와 철회를 반복해 오는 상황이다.
제14회 퀴어문화축제는 6월 1일 홍대 앞 걷고싶은거리에서 역대 최대인원인 1만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주요 야당이 차별금지법 발의를 철회하고 동성애 혐오 세력의 반대가 커지는 상황이었지만 홍대 걷고싶은거리 상인연합회는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상점에 달고 축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2014년 : 4시간동안 가로막힌 신촌 퍼레이드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제15회 퀴어문화축제는 신촌 연세로에서 열렸다. 이 축제는 개최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서대문구는 퍼레이드 약 열흘 전 장소 사용 허가를 취소했다. 서대문구측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한 국가적 추모 분위기에 동참하기 위해’라는 취소사유를 밝혔지만 서울시와 서대문구에는 ‘행사를 열지 못하게 하라’는 항의전화가 빗발쳐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기독교 보수 단체들의 눈치를 봤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번에 보수단체들은 맞불집회를 열며 축제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오전엔 기독교 단체가 동성결혼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고, 퀴어축제가 열린 오후에는 어버이연합과 기독교단체가 행사장 근처에서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맞불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아예 퍼레이드를 가로막고 행진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300여명이 퍼레이드 차량을 가로막고 도로에 눕는 등 행진 저지에 나서 퍼레이드는 4시간이 넘도록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2015년 : 서울광장 둘러싼 혐오세력… 부채춤과 발레까지
미국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결정을 내린 다음날인 6월 28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최초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이때도 개최과정이 쉽지 않았다. 당초 6월 13일 서울광장에서 열리기로 했으나 다른 행사가 선점해 장소제공이 거부됐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대학로도 무산됐다. 주최측은 “성소수자 혐오세력이 집회신고를 하는 관할 경찰서에 상주하며 (축제를 하려는 장소마다) 허위 집회 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축제는 최대 인원인 3만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도 이날 축제현장을 찾았다.
맞불집회도 열렸다. 대한문 앞에서 열린 ‘동성애 조장 중단 촉구’집회에는 경찰추산 4,000여명이 모였고 서울 광장 주변에도 1,000여명이 반대 집회를 위해 모였다.
이날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리퍼트 대사의 피습사건 당시 쾌유를 기원하는 기도회를 연 것으로 유명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한성총회였다. 이들은 서울 광장 인근에서 집회를 열었는데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거나 북을 두드리고, 흰 옷을 입고 호두까기 인형 음악에 맞춰 발레를 하는 등 특이한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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