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이 완전히 열릴 때까지 퍼레이드는 계속돼야 한다.”
여성주의단체 언니네트워크의 활동가 난새(40ㆍ가명)씨가 서울광장을 둘러싼 바리케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축제는 광장에서 열리고 있었지만 이들이 넘어야 할 벽은 여전했고, 실존했다.
성소수자들의 국내 최대 문화행사인 제17회 퀴어문화축제가 11일 서울광장에서 개막했다. 16년 전 50여명의 성소수자가 대학로에서 거리 행진을 벌인 것으로 시작된 이 축제는 어느새 서울의 중심부에 수만여명이 군집하는 대형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에는 주최측 추산 3만명으로 역대 최대 인원이 퍼레이드에 참가했고, 처음으로 서울광장에서 행사를 열었다.
반대급부로 축제를 혐오하는 이들의 세도 함께 커졌다. 이날 서울광장의 경계를 따라 바리케이드가 세워진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광장은 본격적인 행사 시작 전부터 맞불집회를 하기 위해 모인 기독교 단체들로 둘러싸였다. 광장 안으로 난입하려는 이들이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경찰도 양측의 충돌 상황에 대비해 20여개 중대, 2000여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경계에 나섰다. 송춘길 나라사랑자녀사랑운동연대 목사는 “동성애는 인권이 아니라 죄악이다. 이 사실을 알리고 저들을 이성애로 돌아올 수 있게 구원하기 위해 나섰다”며 집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성소수자들은 보란 듯이 축제를 만끽했다. 이날만큼은 편견과 선입견, 혐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순간이었다. 광장은 레즈비언, 게이, 무성애자 등 각자의 성적 지향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레즈비언 딸을 응원하기 위해 나온 호수(56ㆍ가명)씨는 “여기 나온 모든 이들이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사랑해 주고 감싸 안아주기 위해 나왔다”며 환하게 웃었다.
뜻을 모으는 이들도 다양해졌다. 지난해 88개였던 행사 부스는 104개로 늘어났다. 주한유럽연합대표부를 비롯해 미국, 프랑스, 독일 등 14개 국가 대사관도 부스를 마련했고, 구글 코리아, 러시, 아메리칸 어패럴 등 기업들도 뜻을 모았다. 섬돌향린교회,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 연대 등 종교단체들도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특히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축제에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담겼다는 평가다. 축제에 참여한 김조광수(51) 감독은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혐오가 곧 폭력이 되고, 결국에는 살인까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사건 이후로 약자와 소수자들 사이의 연대의 끈이 더욱 탄탄해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장에 모인 이들은 차별과 혐오라는 보이지 않는 바리케이드가 무너질 때까지 축제를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강명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편견은 늘 있어왔다. 우리 사회가 한순간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우리가 그것에 저항하고 반대할 때 사회는 점점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오후 4시30분부터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와 퇴계로, 한국은행 등을 거쳐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3㎞ 가량의 퍼레이드를 진행한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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