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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칼럼] 경제불안과 사회파괴

입력
2016.06.1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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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안전문 정비를 하던 19세 하청노동자가 참변을 당했다. 이 죽음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을 치던 청년에게 강자들의 부당한 횡포와 비리가 저지른 사회적 타살이다. 국가와 사회는 국민이 함께 살기 위해 만든 공동운명체이다. 그러기에 군대에 가 나라를 지키고 세금을 내 사회를 안전하게 만든다. 또 교육을 받아 사회구성원의 역할을 하고 근로를 하여 경제를 발전시킨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해도 최소한 노동자의 목숨은 보호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강남역에서 지하철 점검과 보수작업을 하던 노동자도 불의의 죽음을 당했다. 2011년 인천공항철도에서 선로 유지보수 업무를 하던 5명의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적도 있다. 민간기업들에서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 억울하게 죽어간 산재노동자들은 세기조차 어렵다.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압축경제성장이다. 1960년대 이후 우리 경제는 정부의 고속성장정책에 따라 급속도로 발전했다. 온 국민이 가난극복의 일념으로 피와 땀을 흘린 결과 일 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문제는 정경유착이 뿌리를 내려 정치발전과 경제성장을 왜곡하고 사회갈등을 낳은 것이다. 갖가지 이권과 특혜를 일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독차지함에 따라 정치는 권력을 잡으려는 싸움판으로 변하고 경제는 계층 간 양극화를 심화하는 불공정 구조로 성장했다. 사회는 기득권층과 소외계층이 편을 갈라 대립과 갈등을 낳았다. 이 과정에서 경제성장을 이끄는 기업들은 대기업, 중소기업, 하청기업, 영세기업 등의 순으로 계급화하여 대기업이 이익을 독점하고 여타기업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먹이사슬구조를 형성했다. 각급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다시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근로 등으로 신분이 나뉘어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

최근 이러한 경제성장이 한계상황을 맞아 발전잠재력과 고용창출능력을 동시에 잃고 실업자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경제의 벽에 부딪혀 아예 성장동력을 잃고 있다. 이렇게 되자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비정규직의 저임고용과 위험의 외주화가 보편화했다. 노동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헐값노동을 감수하고 목숨도 가볍게 여겨야 하는 극한상황이 왔다. 월 144만원의 박봉을 받으며 안전도 지켜주지 않아 혼자 지하철 안전문 정비를 하다가 가방에 컵라면 한 개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난 구의역 청년노동자의 삶이 바로 이 극한상황을 대변한다. 구의역 청년의 삶은 일부 청년들의 삶이 아니다. 희망을 잃고 좌절 속에 사는 모든 청년의 삶으로 보아야 한다. 실제로 고속성장 시기 10%가 넘던 경제성장률이 2%대로 추락했다. 기업들은 이익을 벌기 위해 기계화와 자동화를 서둘러 근로자를 내쫓고 있다. 청년들 거의 절반이 취업을 못 하고 위험한 하청업체나 영세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거나 실업자 생활을 한다.

노동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 위험의 외주화와 비정규직 남용을 금지해야 한다. 제반 공공시설의 안전업무에 대해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직접고용과 정규직화를 의무화하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전관 채용과 같은 비리의 척결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경제발전의 개념과 틀을 바꿔야 한다. 경제는 돈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천민자본주의 의식은 버려야 한다. 동시에 모든 산업을 소비자와 노동자의 삶의 가치에 초점을 맞춰 발전시켜야 한다. 또 산업구조를 중소기업 중심으로 개혁하고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그리하여 먹이사슬구조를 끊고 고용창출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 임금 상한제 실시 등의 노동개혁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청년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어 스스로 미래산업을 발굴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 경제가 국제경쟁력을 기르고 건전한 성장을 하여 나라를 올바르게 만드는 길이다.

서울대 겸임교수ㆍ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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