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년 차인 최모(30)씨는 최근 여름 휴가지를 선정하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딸 요량으로 지난해부터 필리핀 여행을 계획했지만 복병이 생겼기 때문이다. 신생아 소두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지카 바이러스’(지카)로 인해 필리핀이 여행 주의 지역으로 분류되면서 최씨는 선뜻 휴가지로 이곳을 낙점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여행 주의 지역으로 분류된 나라를 제외하고 나니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었다. 최씨는 13일 “당장 임신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행지에 가서 모기에 물리지 않을 자신이 없고 물리면 계속 찝찝할 것 같았다”며 “결국 생각했던 예산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지카에서 안전한 하와이로 여행지를 변경했다”고 말했다.
7~8월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지카 변수로 가임기 여성들의 해외 휴가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카 유행 지역에서는 임신 계획을 연기하라는 권고까지 하는 등 경고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데다 국내에서도 5명의 감염자가 나오면서 지카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주로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휴가지 선택에 관한 고민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아직 애는 없고 휴가를 다녀와 임신을 하려고 계획 중인데 (필리핀) 보라카이 괜찮을까요’, ‘동남아 지역을 알아보고 있는데 지카 바이러스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네요’, ‘지카 바이러스 때문에 해외 안 나가고 제주도를 선택했어요’ 등 사연도 다양했다. 결혼 2년 차인 김모(29)씨는 “지카 바이러스에 대해서 알려진 게 많지 않다 보니 불안함이 더 크다”며 “멀지도 않고 비용도 적절한 태국에 3박 4일 일정 정도로 가려고 했다 결국 보류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지난 1일부로 지카에 따른 여행 주의 지역을 51개국에서 64개국으로 확대해 휴가지 선택의 폭이 줄어든 것도 여성들의 걱정을 더하는 부분이다. 여름 휴가지로 인기 높던 동남아 국가들이 대부분 포함된 것은 물론 중남미 대부분 국가와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이 두루 지카 주의 국가로 분류되면서 인기 여름철 휴가지는 지카 주의보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질본은 특히 과거 환자가 발생했던 국가도 잠재적 발병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 여행 주의 국가 기준을 ‘지카 바이러스 환자가 최근 2개월 이내 발생한 국가’에서 ‘2007년 이후 환자가 발생한 국가’로 강화했다. 이에 따라 라오스, 말레이시아 등이 새롭게 추가됐다. 라오스로 여름 휴가를 계획 중인 김모(27)씨는 “비행기 표를 다 끊고 나서 라오스가 포함된 걸 알게 돼 걱정이 크다”며 “여행지를 변경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보건 당국은 여행 직후 임신 계획이 있다면 지카 환자가 발생한 국가 외의 지역으로 휴가를 떠날 것을 권고했다. 질본 위기대응총괄과 관계자는 “임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가능한 지카 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한 국가로 가지 않는 게 좋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귀국 후 최소 2개월 간은 임신을 연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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