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20대 국회가 개원식을 열어 4년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개원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입장하자 여야 의원들이 모두 일어서 박수를 보내며 예우를 했다. 대통령과 입법부 사이 오랜만에 조성된 화해무드였기에 눈길이 갔다. 마침 지난 주말 여야 원내 지도부의 골프 회동에서도 매홀 멀리건(골프에서 이미 친 샷이 잘못된 경우 이를 무효화하고 새로 치는 것)을 주고 받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
정치권에선 18대 국회를 ‘동물국회’, 19대 국회를 ‘식물국회’에 비유하곤 한다. 여야의 극한대립과 몸싸움을 막기 위해 18대 국회 마지막에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했지만 이후에도 일하는 국회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갓 출항한 20대 국회가 앞으로 어떤 항적을 그려 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이전 국회처럼 국제 정세와 국내 현안을 나 몰라라 하며 정쟁만 일삼다가 운명의 골든타임을 놓칠 것인지, 아니면 응급실의 베테랑 의사처럼 능숙하고 빠른 솜씨로 환부만 정확히 도려내 환자의 생명을 살릴 것인지.
다행히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신호가 더 많다. 임기 개시일로부터 7일 내에 의장단을 선출하도록 한 법정 시한을 넘기긴 했지만 20대 국회는 역대 최단 기간에 원 구성을 완료했다. 이렇게 원만하게 처리된 것은 법정 시한이 국회법에 규정된 1994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 9일 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된 야당 출신 정세균 의장이 의장석에서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 의사봉을 건네 받는 모습도 본회의장에선 좀처럼 찾기 힘든 훈훈한 장면이었다. 여야를 통틀어 최다선(8선)인 서 의원은 전날 의장직 양보 의사를 밝혀 교착 상태였던 원 구성 협상의 물꼬를 트는 정치력을 보여주더니, 이날은 최다선으로서 의장직 선출을 위한 사회 진행을 마친 뒤 환히 웃는 얼굴로 경쟁자였던 정 의장을 맞았다.
물론 여야가 상생과 협력의 정치를 펼치는 것은 20대 국회를 둘러싼 외적 환경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여야 모두 ‘3당 어느 한 쪽에도 과도한 힘을 싣지 않은 4ㆍ13 총선 결과는 대화와 타협, 정파와 진영을 넘나드는 협치를 하라는 국민의 지상 명령’이라며 몸을 바짝 엎드리고 있다. 그래도 20대 국회의 변화에 너무 인색하게 굴 필요는 없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을 맞는 20대 국회의 첫 출발은 분명 나쁘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앞으로의 정치 일정이다. 내년 예정된 대선은 ‘협치 모드’를 삽시간에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대선 무렵 정치판에서 발원한 허위의 와류는 사회의 모든 영역을 네 편, 내 편으로 가르기 쉽다. 17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BBK 의혹 소동은 이런 정치권의 후진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특검법 처리 문제로 여야가 대치하던 당시 국회 본회의장에선 쇠사슬과 전기톱이 등장했다. 18대 대선 직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두고 벌어졌던 여야의 대립도 상대를 짓밟고 말겠다는 대결 프레임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사실 20대 국회 앞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허용, 국회법(상시 청문회법) 재논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환원, 노동개혁법 처리, 기업 구조조정 해법 등 뜨거운 감자가 수두룩하다. 협치와 상생의 정신이 허물어지는 순간, 언제든 싸움만 하던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럴 때면 국회 개원식에서 의원들이 낭독한 의원 선서문을 되새겨보길 권한다. 당론이나 정파에 휘둘리는 대신 오로지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ㆍ복리 증진, 국가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는 선서문 내용만큼 명확한 해법이 또 있을까.
하나 더 추가한다면 상대를 향한 배려다. 골프 경기에서 멀리건을 남발해선 곤란하지만, 적절히 사용하면 게임의 윤활유가 될 수 있다. 여야 모두 곤경에 처한 상대에게 한번쯤은 시원하게 ‘멀리건’이라고 외쳐주는 여유에서 출발하면 어떨까. 여소야대ㆍ3당체제의 20대 국회가 앞둔 과제는 한 번에 풀기 어려운 고차원의 방정식일 경우가 많을 테니 말이다.
김영화 정치부 차장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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