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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임시 전직지원회사 운영… 소셜플랜으로 ‘상생 구조조정’

입력
2016.06.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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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車부품업체의 위기 극복

80년 역사의 KDK오토모티브

2004년 경영난에 첫 번째 위기

1년 간 운영되는 ETC 만들어

80% 급여 보장하며 전직 교육

해고 직원 85% 재취업에 성공

합의 없이 불가능한 獨 구조조정

근로자대표위원회에 법적 권한

노사 함께 구체 계획 마련 유도

합의 못하면 제3자에 결정권

해고자 선별 인식도 우리와 달라

가족 부양자, 연장자들 많이 남아

지난 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를 타고 동쪽으로 1시간 가량 달려 도착한 헤센주(州) 베히터스바흐(Wachtersbach)시. 이곳 4만8,000㎡ 부지에 자리잡은 자동차 부품제조업체 KDK오토모티브의 베히터스바흐 공장은 센터콘솔(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기어 및 뒷좌석 통풍구 등을 덮는 긴 플라스틱 틀), 데코파트(플라스틱으로 사출한 차량 내부 전면과 차 문 안쪽 틀) 등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 BMW 등에 납품하는 강소기업이다.

1935년 설립돼 80여년의 역사와 전통, 기술력을 가진 이 기업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독일이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2000년대 이후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며 2013년 우리나라 갑을상사그룹의 동국실업에 인수됐다. 그러나 KDK오토모티브는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노사가 화합해 인력 감축을 최소화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했다. 특히 해고가 불가피한 직원들에게는 전직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2003년 베히터스바흐 공장의 물류직원으로 입사한 묄러 유르겐(44) 근로자대표위원회(Betriebsrat) 위원장은 이러한 과정의 산 증인이다. 묄러 위원장은 과거 이야기가 나오자 서류 보관용 철제 캐비닛을 열어 문서가 잘 정리된 두꺼운 파일을 꺼내 보였다. 그는 “구조조정 당시 서류와 기록이 꼼꼼히 정리돼 있다”며 한국에서는 좀처럼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생형’ 구조조정 이야기를 들려줬다.

ETC 덕분에 61.5% 재취업

그가 지켜본 회사(당시 사명은 ‘키플래스틱’)의 첫 위기는 입사 이듬해인 2004년 찾아왔다. 연간 1억5,000만 유로(약 1,978억원) 안팎이던 매출이 1억 유로(1,318억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경영난에 처한 회사는 공장 직원 590명 중 210명(35.6%)을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들이 인력을 줄일 때처럼 210명 모두가 하루 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것은 아니다. 해고한 근로자를 일정기간 관리하면서 새 직장을 찾도록 돕는 가교 역할의 전직지원회사(Employment Transfer CompanyㆍETC)를 만든 덕분이다. 회사는 공장 근로자들이 속한 지역 화학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당시 사무실의 일부 공간을 활용, 1년(2005년 1월~12월)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ETC를 설립했다. 이에 따라 해고된 직원 210명 중 152명이 ETC 소속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해고될 때 받았던 월급의 80% 급여(정부지원금 60~63% 포함), 법적으로 보장된 연간 최소 휴가(20일) 등의 근로조건 아래 ETC가 마련한 세미나 등의 기본 교육에 의무적으로 참여했다. 직원 75명은 또 추가로 1인당 연간 2,000유로의 자기개발지원금을 받으면서 본인이 필요한 자격증 취득 등 전직과 관련된 교육 훈련을 받았다.

묄러 위원장은 “ETC를 내실 있게 운영하기 위해 회사는 해고자들에게 주기로 약속한 퇴직 위로금의 절반은 ETC에 입사할 때, 나머지 절반은 취업이 되거나 1년이 만료된 시점에 지급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ETC 소속 직원들의 전직 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ETC 과정이 종료되기 전에 직장을 구한 직원에게는 잔여 교육기간의 절반에 해당하는 급여를 보너스로 지급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덕분에 ETC로 소속을 바꾼 해고 직원 152명 중 85%(전체 해고자 중 61.5%)가 재취업이나 전직에 성공했다. 초기엔 반발이 컸던 공장 직원들도 이 같은 결과에 만족해하자 분위기도 바뀌었다. 묄러 위원장은 “ETC로 인해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 210명을 감축했고, 직원 입장에서는 ETC라는 회사에서 1년간 더 일하면서 시간을 벌었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시 노사간 충분한 협의 법 규정

이 업체가 ETC를 설립해 구조조정을 큰 탈 없이 진행할 수 있었던 건 구조조정 시 노사가 충분히 협의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독일 사업조직법은 기업이 구조조정처럼 근로자 전체 또는 상당수에 중대한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는 사업 변경을 할 경우 이를 사업장 내 근로자 권익을 대변하는 조직인 근로자대표위원회에 미리 통보하고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이로 인해 근로자에게 발생할 경제적 불이익을 조정 또는 완화하는 구체적 계획(소셜플랜ㆍSozialplan)도 노사가 합의해 만들도록 하고 있다. 근로자대표위원회는 요구하는 사항을 제시하고, 사측과 이견이 있으면 서로 조율해 사전에 계획서를 만들어야 한다. 당시 키플래스틱이 만든 ETC도 소셜플랜에 담긴 내용 중 하나다.

만약 노사 합의가 안돼 소셜플랜이 만들어지지 못할 경우엔 노사 어느 한쪽이라도 연방노동청에 중재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당국은 사용자 측이 지정한 인사 1명, 노동자 측이 지정한 인사 1명, 양측이 모두 동의하는 인사 1명 등 총 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중재위원회를 꾸린다. 독일 베를린의 파프 호프만 변호사는 “중재위원회는 양측에 대안을 요구한 뒤 다시 이견을 조율한다”며 “그래도 합의가 안될 경우에는 결정권을 쥔 중재위원장(양측이 모두 동의한 인물, 주로 전ㆍ현직 판사)이 양측 입장을 감안한 최종안을 만든다”고 말했다. 물론 노사는 모두 이 안을 따라야 한다

근속ㆍ가족 많은 직원 우선 보호

기업이 구조조정 시 해고 대상자를 선정하는 작업도 근속기간, 장애요소, 나이, 부양의무 등을 감안해 진행돼야 한다. 각 지표에 일정 배점을 부여하고, 직원 개인별로 점수를 매겨 객관적으로 대상자를 추려내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배우자나 자녀가 있어도 근속 연수가 높은 직원들을 해고 1순위로 올려 놓는 것과 달리 독일은 가족 부양의무가 있거나 오랫동안 일을 한 직원들을 보호하기 때문에 나이 많은 직원들이 회사에 남는 경우가 더 많다. 베를린에서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회 변호사는 “(기업의 부당한 해고를 방지하기 위한 법률인) 해고제한법(Kundigungsschutzgesetz)은 공정한 선별을 규정하고 있다”며 “50세 이상 고령인 직원은 회사에서 쫓겨 나면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반면 젊은 직원은 재교육 시 새 직장을 찾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는 인식이 독일 사회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KDK오토모티브 베히터스바흐공장 구조조정 실무 담당자는 “독일에서는 오히려 젊은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을 수 있어 법적 절차대로 생산직, 사무직, 정보기술(IT) 계열 등 직군별로 나눠서 대상자를 선별했다”고 말했다.

일자리 나누기로 해고 최소화

KDK오토모티브 레네슈타트(lennestadt) 공장에서는 노사 합의로 ‘조업단축’(Kurzarbeit)을 활용했다.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1년간 근로자들이 주 4일 근무로 일자리를 나눈 것이다. 근로자들이 근무하지 않는 하루는 집에서 대기하거나 일손이 부족한 다른 기업이 지자체를 통해 요청해 올 경우 일을 했다. 이런 날 임금은 정부가 보전해줬다. 김국원 KDK오토모티브 유럽법인장은 “조업단축 덕분에 직원 50~60명의 자리를 보전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독일 제도 참고하되 취지 이해 선행돼야”

전문가들은 독일의 제도를 참고할 만 하지만 그 보다는 법에 담긴 취지를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표피적으로 제도만 받아들여서는 법률을 만들어도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동석 최동석인사조직연구소장은 “독일은 1976년 기업의 중요한 사항을 노사 동수로 구성된 감독위원회(Aufsichtrat)에서 결정하게 하는 공동결정법(Mitbestimmungsgesetz)을 제정했다”며 “구조조정은 반드시 이해관계자들의 합의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게 독일 사회의 공감대”라고 강조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독일은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경영이 투명하지 않아 구조조정 시 경영진의 책임을 놓고 노사 갈등이 불거질 수 밖에 없다”며 “독일은 중소기업이 주를 이뤄 노사간 파트너십 형성이 용이한 특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베히터스바흐ㆍ베를린=박민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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