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7월 미국과 쿠바가 정식 수교 한데 이어 미국 대통령으로는 88년만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올 3월 쿠바를 방문했다. 같은 달 영국 출신 록밴드 롤링스톤스가 수도 아바나에서 펼친 무료 공연에 60만여 명이 열광했다.
오바마의 쿠바 방문이 양국관계 개선의 실질적인 전환점이었다면, ‘자본주의 퇴폐문화’로 여겨졌던 록 공연은 쿠바의 변화와 개방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잇따라 쿠바를 찾는 등 남북한의 대 쿠바 외교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굳게 닫혔던 쿠바의 빗장이 서서히 풀리고 있다.
지난 8일 오후9시45분(현지시간) 쿠바 수도 아바나의 ‘아바나 카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전통을 잇는 이곳에 30대부터 70대까지로 보이는 미국 관광객 30여 명이 찾았다. 1950년대의 클래식자동차 2대와 오토바이, ‘CUBANA'라고 쓰인 경비행기까지 실물 그대로 장식된 카페 안에서 관광객들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후 10시 ‘아바나’라는 재즈 음악과 함께 시작된 공연은 13명의 밴드와 10여 명의 남녀 댄서들이 1시간30분 동안 원형 나무 바닥으로 된 무대와 객석을 달궜다.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다는 칵테일 모히토와 쿠바산 맥주 등을 마시던 100여 명의 관람객들은 귀에 익은 음악 ‘관타나메라’가 나오자 흥겨움에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댄서들의 손에 이끌려 무대에 오른 관객들은 정열적인 살사 춤을 추며 아바나의 밤을 만끽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전세비행기를 타고 온 브라운(72)씨는 “비행기로 40분도 걸리지 않는 쿠바로 오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며 “옛날 아바나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는데 직접 와보니 감동, 그 자체”라고 말했다.
택시로 5분 거리의 나이트클럽 ‘까사 데 무시까’(음악의 집)는 평일 밤인데도 몸에 딱 붙는 원피스 차림의 젊은 여성들과 바람잡이 40여 명이 거리에서 호객행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외국인의 팔짱을 끼고 추파를 던지는 풍경은 말로만 듣던 향락의 도시 아바나였다. 50대의 한 미국인은 “쿠바가 완전개방되면 향락산업부터 빗장이 풀릴 것”이라며 “과도기인 지금 쿠바가 그나마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아 서둘러 보러 왔다”고 말했다.
외국인 대상 관광산업은 헤밍웨이와 체게바라가 도맡고 있다. 9일 헤밍웨이가 살았던 핑키비히아의 헤밍웨이박물관과 아바나 도심의 암보스문도스 호텔에는 외국 관광객이 꼬리를 물었다. 박물관 정문에 내걸린 종을 쳐보던 독일 하이델베르그 출신의 크리스탈(64ㆍ여)씨는 “쿠바에 오기 전에 읽은 소설 ‘노인과 바다’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니 너무 좋다”고 흐뭇해했다. 헤밍웨이가 장기 투숙한 암보스문도스 호텔 511호실에서 해설사를 맡고 있는 에스페란사(50ㆍ여)씨도 “헤밍웨이와 카스트로는 1960년 5월15일 낚시대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다”며 “카스트로의 유일한 미국친구가 바로 헤밍웨이”라고 말했다.
쿠바혁명의 영웅인 체게바라의 흔적은 쿠바 전역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바나 혁명광장 인근 내무성 외벽에서도, 아르마스 광장의 책가게에서도, 길거리 담벼락 그림에서도 체게바라는 살아있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쿠바를 찾은 미국인 관광객은 16만1,000명으로 2014년보다 77%가 증가했다. 이 기간 외국인 350만명이 쿠바를 방문, 2014년보다 17%의 증가율을 보였다.
오바마의 쿠바방문 이후 자본주의의 쿠바진출도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달 1일에는 7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미국 마이애미항을 떠난 3만톤급 크루즈 아도니아호가 아바나에 입항, 쿠바와 첫 물꼬를 텄다. 미국인들은 매달 2회 각 7일 여정으로 아바나와 시엔푸에고스, 산티아고를 돌아 마이애미로 귀항한다. 또 같은달 3일 아바나 프라도공원에서는 세계적 명품 브랜드 샤넬의 패션쇼가 열렸고, 17일에는 미국 마이애미와 쿠바 아바나 간 모터보트 경기가 58년 만에 열려 개방의 불을 지폈다.
미국 영화도 진출했다. 현재 촬영 중인 ‘분노의 질주8’은 미국 영화 사상 첫 쿠바 로케이션 작품이고, 2017년 6월 개봉예정인 ‘트랜스포머5’도 쿠바에서 촬영 중이다.
쿠바도 개방에 대비하고 있다. 쿠바 정부는 지난달 24일 관보를 통해 개인 소유 중소기업의 법적 지위를 보장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개인이 식당과 미용실 등 소규모 자영업만 할 수 있던 터라 사회주의 쿠바가 시장경제를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면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 전후로 쿠바인에게 적용되던 무상 주택제공 등 미국 이민특혜가 사라질 것을 우려한 쿠바인들의 미국행이 오히려 증가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에는 1,000여 명의 쿠바난민들이 파나마에서 무단으로 국경을 넘어 코스타리카로 입국, 미국행을 감행했다. 2014년 9월부터 1년간 미국에 입국한 쿠바인은 4만3,000명 규모로 전년도 같은 기간의 2배에 달한다.
여기다 쿠바 개방의 하이라이트인 미국의 금수조치 해제를 미의회가 쉽게 동의하지 않으면서 마지막 걸림돌이 되고 있다. 쿠바는 미국 측이 매년 4,085달러(480만원)의 임대료만 지불하고 사용하고 있는 관타나모 해군기지 철수를 주장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쿠바개방은 9부 능선을 넘고 있었다.
쿠바 방문이 두 번째인 미국인 루(42ㆍ여)씨는 “양국 지도자가 손을 맞잡은 이상 개방의 파도가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내다봤다.
아바나(쿠바)=글ㆍ사진 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