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와 북미를 잇는 중미의 코스타리카는 인구 500만이 채 안 되는 소국이다. 한국인들은 축구와 커피 정도로 기억하는 국가지만 국제적으로는 ‘중미의 스위스’로 불리고 있다. 선진적인 복지제도와 환경 보호 정책이 완비돼 있으며 특히 1948년 라틴아메리카 대륙 최초로 군대를 전면 폐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8일 서울 마포구 주한 코스타리카 대사관에서 만난 로돌포 솔라노 끼로스 대사는 “전세계에서 무상 의료체계를 갖춘 나라는 쿠바와 코스타리카뿐인데 공산독재 국가인 쿠바를 제외하면 민주국가로는 코스타리카가 유일하다”며 자부심을 과시했다. 솔라노 대사는 이어 “코스타리카의 군대 폐지는 파나마, 엘살바도르 등 이웃 국가의 비무장 흐름을 주도했다”고도 했다. 그는 또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진행 중인 사실을 거론하며 “강소국으로서 한국과 함께 혁신을 이루고 싶다”고 강조했다.
_양국 최대 현안은 무엇인가.
“FTA 협상에 가장 집중하고 있다. FTA는 양국이 전통적인 수혜 관계에서 벗어나 전략적인 관계로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규모나 거리와 상관없이 한국과 코스타리카는 이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무역과 투자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기후변화 등에서 국제 협력을 늘려가길 바란다.”
_양국 FTA로 한국이 얻을 이득은 무엇인가.
“코스타리카는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멕시코, 페루 등 전세계 52개국과 이미 FTA를 맺고 있어 기업에겐 완벽한 플랫폼을 제공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창조경제 면에서도 양국은 상당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리는 짧은 기간 내에 여러 FTA를 추진하고 산업 혁신을 거듭해왔다.”
_코스타리카 커피는 무엇이 다른가.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등 커피 생산국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스페셜티 커피’원두를 생산한다. 원두 생산에 있어 환경과 사회적 책임에 관해 매우 엄격한 생산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환경 부국이기도 하다. 국토의 40%를 국립공원 등으로 지정할 정도로 엄격한 보호 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환태평양조산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에 따라 생성된 화산 또한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_엄격한 환경 정책의 배경은 무엇인가.
“‘친환경 국가(green country)’는 우리가 내세우는 국가 브랜드다. 세계경제포럼에서 지정한 10개 친환경 국가 중 유일한 비유럽 국가가 코스타리카다. 경제 분야에서 ‘녹색 전통’을 만들도록 힘쓰고 있다. 오랜 기간을 통해 구축한 국가적 정체성인데 일련의 결정들을 통해 민주주의, 인권, 환경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_무상 의료서비스는 어떻게 도입됐나.
“의료보험 개혁은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스타리카 내 모든 공공병원 운영을 담당하는 기관(Caja Costarricense de Seguro SocialㆍCCSS)을 통해 모든 의료서비스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비용이 많이 들지만 주거, 교육과 함께 우리의 사회적 안정성을 이루는 중요한 기둥이다.”
_예산 문제는 없나.
“재정건전성은 ‘악몽’과 같다. 현재는 문제가 없지만 다음 세대에 닥칠 수 있는 문제다. 때문에 최근 개혁 논의에 돌입했다. 정부와 야당 등 다자 논의 끝에 탈세 방지, 공공분야 고임금 삭감, 연금 개혁 등 3개 프로젝트를 도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요건에 맞춰 소득세 등 세금 개혁도 진행 중이다. 코스타리카 국민들도 물론 높은 세금은 원치 않는다. 인기 있는 길은 아니지만 현명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코스타리카는 비교적 정치적 안정성이 높은 국가 가운데 하나다. 솔라노 대사는 “계속된 혁신이 현재의 코스타리카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에스파냐의 오랜 식민지를 거쳐 1848년 완전 독립한 코스타리카의 첫 번째 변신은 사형제도 폐지였다. 솔라노 대사는 “1878년 당시 장군 출신의 대통령은 평화를 위해 사형제 폐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1885년 국가 전역에 전력망을 갖춘 일대 변혁을 이뤘고 1948년 내전을 겪으면서 마지막으로 군대를 폐지했다.
_군대를 폐지한 배경은 무엇인가.
“1948년 선거에 정부가 불복하자 농장주 출신의 호세 피게레스가 사실상 혁명을 일으켰다. 단 18개월 동안 집권한 피게레스가 군대를 없앴다. 평화를 위한 선택이었고 군사 예산은 교육, 보건 분야로 돌렸다. 모두 코스타리카식 ‘뉴노멀’이자 혁신의 역사다.”
_국가적 분쟁에는 어떻게 대비하나.
“2010년 니카라과가 북부 지역을 급습해온 적이 있었다. 당시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수단은 국제법이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를 찾았고 5년의 송사 끝에 ICJ는 니카라과의 침입을 인정했고 비난했다. 국제사회의 조정에 따라 결국 코스타리카가 승리했다. 군대가 없고 갖기도 원치 않는 코스타리카가 갖는 유일한 힘은 국제 사회다.”
_국민들의 반발은 없나.
“모든 군사 시설은 박물관, 도서관, 대학으로 전환됐다. 당시 군인들은 슬프고 화도 났겠지만, 아들과 손자 세대의 행복을 생각하면 답은 단순해진다. 현재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된다. 논쟁이 없었던 이유다.”
_정치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배경이 따로 있나.
“고대 민주주의에 가장 가까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의회는 9개 정당 출신의 57명 의원으로 구성돼 있다. 작지만 다양한 의회를 굴러가게 만들 방법은 대화와 합의밖에 없다. 모든 공공재와 공공서비스를 분배하는 문제에서는 완전 개방형 공청회를 이용한다. 작은 분야에서부터 중재 절차를 완비해 둔 것이 안정성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코스타리카에서는 국민 누구나 장관이나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고 요청 받은 공직자는 법적으로 10일 내에 응답할 의무가 있다. 이 정도면 아메리카뿐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가장 민주적인 국가가 아닌가.”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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