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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銀에 12조ㆍ조선업체엔 수조원 넣으면서…실업대책 너무 인색

입력
2016.06.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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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수만명 실직 우려 불구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등

정부 대책은 기존 제도 재탕

유일한 버팀목 실업급여도

외국 비해 액수 적고 기간 짧아

고용보험 외 재정 투입하고

장기실업 대응할 실업부조 등

“좀 더 과감한 대책 필요” 목소리

“일거리가 없어 미치겠습니다. 내일이 되어야 내일 일을 알 수 있으니까요.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당장 원청에서 일당을 깎는다고 합니다.”(대형조선소 사외 하청에 근무하는 조모씨)

산업 구조조정 대상인 조선업 등을 중심으로 감원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올해 5월까지 조선업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한 사람은 6,770명. 지난해 같은 기간(4,292명)에 비해 57.7% 급증한 수치다. 15일 발표된 통계청의 5월 고용동향에서도 이들 조선업이 밀집해 있는 경남 지역의 실업률은 1년 전보다 1.2%포인트 폭등하며, ‘고용 쇼크’가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조선업에서만 수만 명의 실직자가 나올 거라는 비관적 전망이 적지 않다.

칼자루를 잡은 이들은 손사래를 치지만, 결국 구조조정은 ‘사람을 자르는 것’이다. 구조조정 및 산업개편의 시작은 돈 문제겠지만, 그 끝은 결국 잘려 나온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하지만 정부가 지금까지 밝힌 대책을 보면 기업과 은행을 살리겠다는 내용은 넘치지만, 사람을 살리는 얘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사실이다.

정부 실업대책은

정부는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으면서 구조조정에 따르는 대량실업에 대응할 대책도 발표했다. 정부가 강조한 것 중 하나는 조선업체 물량팀(재하청 일용직 근로자)처럼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이 실업급여를 받을 길을 적극 열어준다는 부분이다. 사업장이 폐업한 경우 근로자가 증빙자료(급여통장 등)만 제출하면 ‘근로자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고, 밀린 고용보험료를 내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피보험자격 확인청구제도), 이를 적극 홍보하겠다는 얘기다.

대책의 또 다른 줄기는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대규모 해고 발생 가능성이 큰 업종을 지정해 근로자 등에게 특별한 지원을 해 주는 것인데,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되면 실업급여 수급 기간이 90∼240일에서 120~270일로 늘어난다. 실업급여 지급액도 실직 전 평균임금 50%에서 60%로 확대된다. 이밖에 심리상담, 실업급여, 직업훈련, 취업알선을 원스톱 지원하는 센터도 만들어진다.

기존 제도만 활용한 대책

그러나 구조조정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정부의 대책이 여전히 소극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기존 제도ㆍ대책을 활용할 뿐 사회적 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고용대란에 적극 대응할 새 내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물량팀이 실업급여를 받도록 하는 피보험자격 확인청구제도는 원래 있던 제도를 잘 살리겠다는 정도이고,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역시 대부분 현재 고용보험(실업급여) 체제 안에서 실직자에게 주는 혜택을 좀 더 얹어주는 수준이다.

이런 아쉬움은 실업대책과 함께 발표된 국책은행 자본확충방안과 비교할 때 더 커진다. 정부가 2조원 이상, 한국은행이 10조원을 들여 산업은행 및 수출입은행의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이 대책의 골자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12조원을 투입하겠다는 정부가 실업대책에는 너무 인색하다”며 “조선업체에 이미 투입된 수조원을 고용대책이나 지역경제 대책에 썼더라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조선업종 노조연대 회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구조조정 중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조선업종 노조연대 회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구조조정 중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실업급여의 한계

현재로서 실업급여는 실직자가 기댈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지만, 한국의 실업급여는 받을 수 있는 기간도 짧을뿐더러 그 액수도 상대적으로 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 볼 때 한국 실업급여 소득대체율(실질 2개월 후 기준)은 43%로, 덴마크(92%) 캐나다(86%) 등의 절반에 불과하고, OECD 평균(69%)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실업급여 수급 가능 기간을 비교해 봐도 40세 근로자 기준으로 한국은 7개월인데, 독일 폴란드 아일랜드 등은 12개월, 덴마크 프랑스 스페인 등은 24개월에 이른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국의 사회안전망, 특히 고용보험 제도가 일천한 수준이어서 고용 위기에 효과적인 대책이 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업대책을 고용보험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보험은 기여에 대한 보장 차원에서 이뤄져야지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이들을 고용보험으로 해결해서는 안 되며 세금(재정)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장기실업에 대응할 사회안전망인 실업부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실업부조는 고용보험이 재원인 실업급여와 달리 세금으로 재원을 충당하는데, 현금으로 생활비를 주는 것에 더해 무료 직업훈련 및 직업알선 등의 지원이 병행된다. 실업부조를 제안하는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실업기간이 길어지면 제자리에 복귀하기 어려워져 별 수 없이 빈곤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 실정에서 한 사람이 실직하면 가구원 모두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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