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과 공존하는 법 배우려
특수학교 대신 일반학교 선택
교실 배치부터 이동 수단까지…
주변 불만ㆍ핀잔에 온종일 눈치만
대피훈련 때도 배려 못받고 방치
5개월 동안의 투병 생활 끝에 2년 전 학교로 돌아온 정윤(10ㆍ가명)이는 휠체어와 함께였다. 2013년 초등학교 1학년 가을 척수신경염증을 앓게 된 정윤이는 후유증으로 하반신 전체를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지체장애 1급 판정도 받았다.
이 때부터 아빠 김모(43)씨는 학교에서 ‘이기적인’ 학부모가 돼야 했다. 학교 구성원들은 딸이 장애 학생으로서 응당 받아야 할 각종 지원을 권리가 아닌 특혜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이 느닷없이 장애인이 됐을 때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정윤이를 특수교사와 특수학급이 있는 학교로 보내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교육 시키거나 수년간 함께 어울린 친구들 곁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방법이었다. 부모는 후자를 택했다. 힘든 앞날이 뻔히 예상됐지만 장애인이 된 정윤이의 장래를 위해 비장애인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믿음이 훨씬 컸다. 김씨는 14일 “장애까지 얻은 딸을 낯선 환경으로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정윤이가 아프기 전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또래들이 장애인 친구를 잘 돌봐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선택을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정윤이가 다니는 경기도 A초등학교는 4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다. 딸의 일상을 도울 공익요원이 학교에 배치되긴 했지만 김씨가 매일 등ㆍ하교는 물론 이동수업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챙겼다. 다행히 2학년까지는 1층에 교실을 배정받아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문제는 3학년에 올라가면서 생겼다. 원칙적으로 장애 학생이 있으면 1층 교실을 배치 받아야 하나 ‘정윤이 때문에 고학년이 돼도 위층으로 못 올라간다’는 주변의 불만과 핀잔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김씨는 “딸이 혹여 좋지 않은 소문을 들을까 봐 3학년은 2층에서 다니겠다고 학교 측에 말했다”고 털어놨다. 학교가 부랴부랴 엘리베이터 설치 예산을 확보하기로 했지만 부녀는 긴 시간을 견뎌야 했다.
전교생이 지켜보는 앞에서 버려진 딸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정윤이가 비장애인 친구들과 공부하기를 원했던 김씨는 최근 딸을 전학 보내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몸이 불편한 정윤이가 안전교육에서조차 배제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뒤였다. 김씨가 지난달 16일 수업을 마친 정윤이를 데리러 갔을 때 학교는 민방위훈련 준비로 분주했다. 정윤이도 공익요원과 함께 운동장 스탠드로 대피하려 했지만 담임 교사와 학생들 중 누구도 맨 뒤에서 쫓아오는 정윤이를 신경 쓰지 않은 채 계단으로 뛰어내려 갔다. 한참 뒤에야 친구들이 대피해 있는 스탠드를 간신히 찾았으나 정윤이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씨가 학교에 찾아가 항의하자 담임교사와 학교 측은 “우리는 할 일을 다했다”며 되레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학교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대피 중이라 경황이 없었던 데다 공익요원과 아빠가 함께 있어 미처 신경 쓰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씨를 절망케 한 것은 단순히 장애인 딸이 버려졌다는 사실 때문 만은 아니다. 위급 상황에서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장애인이 방치되는 모습을 목격한 정윤이 친구들이 앞으로 자라면서 장애를 가진 동료를 존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서다. 김씨는 “만약 훈련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에게서 평소 보고 배운 대로 보호자가 없는 정윤이를 그대로 두고 대피했을 것”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지체장애 딸을 가진 김씨의 지인 홍모(43)씨도 “외국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아무리 일반학교라도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대피할 수 있게끔 교육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차별이 아니라 실수였다는 학교와 교육청
문제제기 이후 교육 당국의 처리 과정을 지켜 보면서 김씨는 또 한 번 좌절했다. 부모는 관할 교육청에 특수학생을 위한 안전교육 매뉴얼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교육청 측은 이 일을 담임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가기에 급급했다. 교육청 특수교육 담당 장학사는 담임교사에게 김씨 부부가 요구하지도 않은 사과를 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교사의 행동을 차별이 아닌 무신경에서 비롯된 불친절로 간주한 탓이었다. 해당 장학사는 “담임교사가 장애 학생을 차별한 사안이 분명 아니다. 서둘러 대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초임교사가 저지른 실수”라고 설명했다.
다음 학기 부녀가 그토록 바랐던 엘리베이터가 학교에 설치될 예정이지만 정작 정윤이는 이 시설을 한 번도 이용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럴듯한 편의시설을 갖춘다고 해서 장애 학생에 대한 차별과 외면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부모도 정윤이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우리가 바란 건 아픈 딸을 배려해 달라는 읍소가 아니었다. 정윤이 친구들에게 ‘장애인과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열린 마음을 가르쳐 주길 원했으나 너무 많은 걸 기대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