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개화파의 거두로 활동했던 서광범(1859~1897)이 우리말로 옮긴 성경 구절 원고가 공개됐다. 한국인이 번역한 성경 친필원고 사료 중 가장 시기가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기독교사연구소는 16일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에서 서광범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우리말로 옮긴 원고를 공개했다. 한국기독교사연구소장인 박용규 총신대 교수는 최근 2년간 미국 뉴저지의 러커스대에서 ‘한국: 은둔의 나라'를 저술한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의 컬렉션 등을 조사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해당 자료를 발견했다. 원고는 “하누님이 어러게 세상을 사랑하시는 고로 당신의 사제를 내려 보내서 창생을 지언허서 사후의 지옥 괴뢰움을 면하고 극낙세게로 뒤이기을 졈지해주시러라”는 문장을 담고 있다.
서광범은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홍영식 등과 함께 조선땅에 개화사상을 펼친 개화파 주역으로,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 실패 이후 일본 망명을 거쳐 1885년 미국으로 떠난 뒤 본격적으로 기독교를 접한 것으로 보인다고 박 소장은 설명했다.
박 소장은 “서광범은 일본 체류 당시 한국인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를 만나 한글을 가르치고 영어를 배운 인연으로, 미국에서 언더우드의 가족의 도움을 받고 교회를 출석했다”며 “한국에 관심이 깊었던 그리피스와도 만나 자신이 적은 우리말 요한복음을 건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고는 미국 망명(1885년 6월) 후 2, 3개월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 소장은 “그가 자발적으로 이 대목을 우리말로 옮겼는지, 면담에서 그리피스가 요구한 것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다”면서도 “다소 호감만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지는 개화파의 신앙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사연구소에 따르면 최초의 한글 성경은 1882년 중국에서 활동하던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가 출간했고, 한국인 번역본(마가복음)은 1885년 2월 일본에서 개화파 이수정이 제작했으나 그 사실만 기록으로 전할 뿐이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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