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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처하는 능력과 자기성찰 없는 공부에 중독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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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처하는 능력과 자기성찰 없는 공부에 중독된 우리

입력
2016.06.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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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엄기호가 분석한다. “공부의 과정은 삶의 무능력자들만 체계적으로 양산하고 있다. (중략) 시험 문제는 잘 풀되 삶의 문제를 대처하는 능력은 형편없으며, 남을 품평하는 데는 날카로운 날을 세우되 자신을 성찰하는 데는 무디기 짝이 없다. (중략) 그래서 우리는 배울수록 무능력해지고, 배울수록 화만 내는 처지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6~7쪽)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의 진단도 마찬가지다. “공부의 블랙홀에 빠진 부모는 공부에 중독된 아이를 만들고, 그 아이들이 사회에 나온다. 공부 백 퍼센트짜리 순도 높은 존재일 뿐, 사회성, 공감능력, 유연성 같은 요소는 상대적으로 결핍된 상태다. (중략) 공부라는 블랙홀이 학교를 넘어서 사회와 인생을 빨아들이고 있다.”(193쪽)

부제가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인 책 ‘공부 중독’은 환멸ㆍ의심의 기록이다. 지난해 여름 둘이 나눴던 네 차례 대담을 엮었다. 공부에 대한 환상과 맹신을 깨라는 조언이 담겼다.

각각 대학에서 학생들을, 병원에서 청소년들을 만나 온 두 사람이 개탄하는 것은 객체이면서 수단에 불과한 공부가 주체인 사람과 목적인 삶을 점령해 버린 주객 전도의 실상이다. 공부가 아이들을 노예 삼아 부리는 지금 사회가 ‘진짜 공부’를 즐겨 온 이들은 안타깝다.

아닌 게 아니라 공부는 수동적 자기복제로 변질됐고 앞줄에 서려면 가져야 하는 표식 따위로 전락했다. 애초 “어떤 지식 권력의 정당성과 주도권을 확인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도전하는 것이 공부였다.”(엄기호) 배우면 익히는 게 학습인데 지금은 배운 뒤 익히는 과정 없이 바로 다음 배움으로 넘어간다. 배우긴 배웠는데 할 줄 아는 것이 없게 된 까닭이다.

공부 중독 현상의 배후에는 공부로 성공한 기성세대가 있다. “지금의 486 부모들은 공부를 잘하면 잘살 수 있다는 생각이 자기 몸으로 체득된 세대예요. 그러니까 부모들이 자신이 성공했던 방법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거죠. 그런데 사실 거시적으로 보면 운이 좋은 세대였던 겁니다.”(하지현) 국가 고도 팽창기에 편승한 이들의 잘못된 믿음이라는 것이다.

바야흐로 ‘고용 없는 성장’ 시대다. 공부가 성공을 견인하는 이야기가 신화가 돼 버린 현실을 저자들은 일깨운다. 그래서 공부는 한낱 알리바이다. 실천과 성숙의 유예를 공부라는 핑계로 합리화하면서 정체하는 청년들의 심리를 정신과 전문의는 폭로한다. 사회학자가 간파하는 것은 국가의 합리화다. 취업난의 책임을 ‘취준생’에게 전가해 버린다는 것이다.

“‘공부 중’이라는 것이 (중략) 통치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니까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라는 것을 합리화할 수 있는 좋은 이유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중략) 지금 국가의 중요한 역할이란 게 자리를 배분하는 게 아니라 자리를 배분 받지 못한 이들에게 네가 왜 자리를 배정받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설명이 ‘네가 준비가 덜 됐다’인 거죠.”(엄기호, 23~24쪽)

교육, 나아가 사회 병폐의 배경을 예리하게 통찰한 책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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