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개원을 맞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사이에 때아닌 ‘스터디’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지 족히 몇 십 년은 된 평균나이 약 55세의 의원들이 대학가에서나 볼법한 스터디 그룹에 너도나도 참여하는 낯선 풍경에 당 안팎의 이목도 집중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주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가는 국회 상임위원회에 앞서 핵심적으로 다뤄야 할 주요 법안을 비롯해 각종 정책 현안들에 대해 공부하는 모임이 활발하다는데요. 보통 소관기관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는 워밍업 수준에서 끝나곤 하던 6월 국회에서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라고 합니다. 앞서 당내에서 ‘교감 선생님’ 역할을 하는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 역시 “6월 국회의 고삐를 좨 국민들의 삶과 관련된 모든 현안을 철저하게 다룬다는 자세로 임해달라”고 학생들(의원들)에게 ‘공부 압박’을 주기도 했습니다.
국회의 13개 전임 상임위 중에서도 ‘경제’를 다루는 기획재정위원회ㆍ정무위원회ㆍ산업위원회는 공부가 필수적인 곳으로 꼽힙니다. 그 중에서도 산업 구조조정을 비롯 대ㆍ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등 만만찮은 이슈가 걸린 산자위는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상임위라고 하네요. 21일 산자위 소속 더민주 의원들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과 스터디를 진행했다고 하는데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산업부의 정책이행 상황에 대한 질문공세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등 미처 예상치 못한 의원들의 열기에 참석한 공무원들조차 깜짝 놀랐다는 후문입니다.
개원 초 각 부처 공무원들이 의원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인사 겸 현안 설명을 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지만, 이처럼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산자위 야당간사로 이번 스터디를 제안한 홍익표 더민주 의원은 “의원들이 부처 공무원을 불러 따지고 지적하는 자리가 아니라 현장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이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산업부 관계자 역시 “야당에서 스터디를 하고 싶다는 제안이 먼저 온 것은 처음”이라며 “과거 야당의원들은 정책보다는 지엽적 사안 비판에 치중한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이제 많이 바뀐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상임위의 더민주 의원들 역시 ‘열공’ 중입니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더민주 간사인 박홍근 의원이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는 당내 위원회 ‘공정언론특별위원회’는 최근 상임위의 현안인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대해 학계와 언론계 인사를 초청해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역시 더민주 간사인 도종환 의원이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의 저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무엇이 문제인가’를 모든 교문위 소속 더민주 의원들에게 한 권씩 ‘선물’하며 정부ㆍ여당과 충돌이 예고돼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에 대해 선행 학습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같은 ‘면학 분위기’는 더민주 전체 의원(122명) 중 절반에 달하는 57명의 초선 의원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국회 신입생’인 이들이 ‘닥치는 대로 공부하자’며 서로 독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내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민병두 의원은 “연구원에서 아침 7시부터 릴레이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데 초선의원들의 출석률이 생각보다 높다”며 “특히 명예교수 출신인 최운열 의원(비례대표)과 성공한 게임회사 ‘웹젠’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김병관 의원(경기 성남 분당갑)이 가장 열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정무위 소속 한 초선의원은 “덕분에 수험생 시절에도 해본 적 없는 밤샘 공부까지 하고 있다”며 빼곡히 필기가 적힌 자료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더민주 초선의원들은 예년보다 빨라진 국회 개원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이동하는 차 안이나 잠자는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19대 국회와 비교하면 계파로 갈려 선배들 따라 여기저기 밥 자리 다니느라 바빴을 초선 의원들이지만 20대 국회 들어 이전보다 계파 색이 확실히 옅어 지면서 선배들 눈치를 덜 보고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이유도 작용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한 수도권 중진의원은 “초선들이 오버 페이스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열심히들”이라며 “선배들도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했지만 이게 하루 이틀 하다 말 분위기가 아니라 슬슬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하며 자극을 받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더민주로서는 17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국회의 꽃’인 상임위에서부터 수권정당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과제가 있는 만큼 앞으로 화력을 쏟아 붓겠다는 계획입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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