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쓰지 않아 비용이 들지 않는 친환경 에어컨이 있다면 믿겠습니까? 국내 언론들이 이달 초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소개하면서 이 에어컨이 화제가 됐습니다.
이 발명품은 방글라데시의 한 사회적 기업이 개발한 ‘에코 쿨러’ 입니다. 영상 속 방글라데시의 마을 사람들은 여름에 낮 기온이 45도까지 치솟을 정도로 더운데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냉방 기기를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에코 쿨러는 이들을 위해 고안된 기기입니다.
에코 쿨러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겨울에 손이 시리면 입을 크게 벌려 ‘하’하고 따뜻한 입김을 불어 손을 덥히고, 여름에 입을 오므려 ‘후’하고 찬바람을 내뿜는 원리를 차용했습니다. 즉 공기가 좁은 공간을 통과할 때 압축ㆍ팽창되며 온도가 내려가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페트병 수십 개의 윗부분만 잘라 철판에 고정시킨 뒤 병목이 실내를 향하도록 창문에 설치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바깥 바람이 페트병의 좁은 병목을 통과하며 시원하게 바뀌어 실내로 들어오게 됩니다. 개발사에 따르면 그 효과는 실로 어마어마해 실내 온도를 섭씨 5도까지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 영상 속 온도계는 섭씨 10도 가량 내려갔습니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지난 2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글이 다시금 화제가 됐습니다. 한 기업의 연구소 부장급 연구원이라고 밝힌 필자는 이 ‘페트병 에어컨’이 ‘과학으로 포장된 집단 무지’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블로그 글 바로보기)
필자는 우선 ‘에코 쿨러’는 냉매로 작동하는 에어컨과 달리 습도를 낮출 수 없기 때문에 ‘친환경 에어컨’이라는 이름이 맞지 않고 온도를 낮출 수 있다는 설명 또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의 세기. 그는 “자연풍 정도의 압력으로는 냉각효과를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앞에 설명한 ‘에코 쿨러’의 작동 원리는 ‘줄-톰슨 효과’를 활용한 것인데 이 효과에 대입하면 1기압(bar)의 압력차가 생길 때 온도가 0.2도 낮아진다고 필자는 설명합니다. 온도차가 5도 이상 발생하려면 25기압의 압축공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페트병의 목 부분을 지나는 바람이 얼마나 빨라야 25기압을 만들 수 있을까요. 우산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불 때 풍속이 약 15m/s이며 기압은 0.00014bar입니다.
2013년 우리나라를 강타한 태풍 ‘매미’의 순간 최대 풍속인 60m/s의 경우 기압차가 0.022bar입니다. 필자의 주장대로라면‘매미’정도의 바람이 불 때 ‘에코 쿨러’가 낮출 수 있는 온도는 0.0044도 입니다.
필자는 “25기압의 차이를 만들려면 자연상태의 바람으로는 불가능하다”며 “밖에서 바람이 부는데 답답하게 페트병으로 틀어막지 말고 그냥 활짝 열어두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한 국내 물리학과 교수는 “외부 단열이 이뤄진 상태에서 냉매 가스를 이용해 인위적 압축ㆍ팽창을 거쳐 온도를 낮추는 것이 냉장고와 에어컨”이라며 “단열도 되지 않는 자연상태에서 바람에 의한 공기 흐름만으로 방의 온도를 낮추는 것은 힘들다”고 강조했습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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