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로 연일 국내외 언론 지면이 뜨겁다. 이번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에는 영국민의 즉물적 감정, 특히 반이민주의가 절대적이었다. 많은 전문가가 지적하듯이, 이는 선진국 내 소득불균형 심화에 따른 중하위층의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그 직접적 원인을 경제 통합 및 세계화에 따른 이주의 증가에서 찾는 움직임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어찌 보면 한 나라의 국민, 특히 중하위층의 감성적 판단에 불과한 브렉시트가 올해 세계 최대 뉴스가 된 이유는 그것이 몰고 올 국제정치 및 경제적 파장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후자의 경우는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이번 주 초부터 세계의 주식 및 외환 시장은 그 충격으로부터 서서히 안정을 되찾고 있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일으킬 국제정치적 파장은 그간 70년 이상 지속한 국제 질서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클 가능성이 있다. 그 질서는 1945년 제2차대전 종전 후 미국 주도로 건설된 것으로, ‘1945년 체제’라 불리기도 한다. 세계경제대공황의 산물인 제2차대전을 겪은 후,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다시는 그와 같은 경제위기와 대규모 전쟁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으며, 이에 대한 해법을 안정된 자유무역 체제의 확보와 운영에서 찾았다. 즉, 세계가 1930년대의 극단적 민족주의, 그리고 이를 근간으로 일부 강대국들이 펼쳤던 제국중심의 블록 경제체제로 회귀하지 않도록 하는 안정적 질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과거 파시즘과 제국주의 치하에 있던 나라와 식민지를 국민국가 형태로 모두 독립(일부는 즉시, 일부는 신탁통치 기간을 거친 후 독립)시키되, 이들을 상품 노동 자본 이동이 용이한 더 큰 지역 단위의 경제권으로 통합하려 했다. 그들 기대로는, 이 경제적으로 엮여 상호의존적이 될 권역은 1930년대의 민족주의와 군사 팽창을 막는 정치적 효과까지 낼 것이었다. 미국이 전쟁의 주범이 속한 서유럽과 동아시아 경제권 건설에 특별한 노력을 경주했던 것은 우연히 아니었다(물론 그 노력은 전범국 독일과 일본 경제의 부활을 전제하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특히, 서유럽의 경우는 미국이 추진한 유럽경제 통일 움직임에 더해 유럽 내부의 자생적인 통합 시도가 함께 이루어졌고, 이는 훗날 EU로 결실을 볼 것이었다.
이런 미국의 신질서 구상은 사실 전후 영국의 입장과는 대립하는 것이었다.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거치며 치명적 경제적 타격을 입은 영국은 식민지와 제국주의, 즉 구질서 유지에 강대국으로서의 운명이 달려있었다. 하지만 1945년 얄타회담에서 미국의 전후 계획이 소련의 찬동으로 관철되었을 때, 영국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그들은 신질서 속에서 미국의 충실한 서브파트너로 기능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몇몇 특혜를 제공받는 위치에 만족해야 했다. 그 후 냉전시대의 대소 공조, 걸프전과 이라크 전쟁 지지, 동유럽 해체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 등, 영국은 ‘1945 체제’의 유지와 확장을 위해 미국을 꾸준히 지원했다. 특히, 영국은 EU에서 미국 입장을 사실상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유럽대륙보다는 오랫동안 외부 세계, 즉 제국의 지평을 바라보던 영국이었는지라, 처음에는 EU 참여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세기 전환 후, 영국이 ‘1945년 체제’에 대해 가지는 충성도는 이전 같을 수 없었다. 유럽경제의 장기 침체, 2008년 위기, 그리고 중국의 부상 등이 큰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 속에도, 영국 정치지도자들은 그 질서에 반기를 들 상상을 구체화하지는 못했다. 반기 게양은 그 변화로 생활에 직접적 타격을 입고 감성이 흔들린 영국 중하위층의 몫이었다. 그들의 불만은 눈앞의 경제 현실에서 비롯되었지만, 미국이 부과한 질서에 궁극적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반미적인 성격을 가진다. 사실 그런 분위기는 우리에게 친숙한 대중문화에서 이미 감지되고 있었다. 20세기 영국 영화 속 주인공 007이 냉전시대 미국을 대행해 소련과 대결하는 영국 첩보원이었다면, 21세기 요원 킹스맨은 미국 계획의 어리석음을 고발하는 중하위층 출신 영국 신사였다.
지난 달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이, 최근 미국은 중국의 적극적인 움직임 탓에 약화할지 모르는 동아시아의 ‘1945년 체제’ 유지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 아마도 그 각별함은 유럽 쪽을 향할 것이고, 그만큼 동아시아가 다시금 변동의 공간이 될 가능성은 커졌다. ‘1945년 체제’ 속에 경제성장이라는 이득은 누렸지만 분단이라는 짐 또한 져야 했던 우리는 당연히 이 변화의 조짐에 주도면밀하게 대처해야 한다. 다만, 브렉시트를 정부의 구조조정 안을 밀어붙이기 위한 위기 조성 담론으로만 사용하고, 국론 분열을 막는다며 또다시 1970년대식 월남패망론을 꺼내 든 우리 정부에게 이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노경덕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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