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위작 사건이 미궁에 빠진 가운데 고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경매에 나설 때마다 최고가 기록 경신을 거듭하며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화제다.
지난해 10월 김환기의 ‘19-VII-71 #209’가 47억 2,100만원에 낙찰되며 박수근이 2007년 세운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 낙찰가 기록인 45억2,000만원을 8년 만에 경신한 데 이어 6개월 만인 지난 4월에는 그의 또 다른 작품 ‘무제’가 48억6,750만원으로 이 기록을 깼다. 그리고 지난 28일 ‘무제 27-Ⅶ-72 #228’가 54억에 팔리며 다시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데는 불과 3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1~4위를 김환기가 독점하고, 4점의 낙찰 총액이 거의 200억에 달하는 상황이다. ‘김환기의 경쟁자는 이제 김환기 뿐’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김환기는 미술전문가 20인이 뽑은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 작가(14표)에 올랐다. ‘미술사적으로 의의가 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나 대중적 인지도와 독창성 측면에서도 고른 표를 받아 김환기가 학계와 시장 모두에서 인정받고 있음이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김환기의 작품이 “동양의 정신성과 서양의 실험성을 적절히 배합”했을 뿐만 아니라 “스케일과 표현력 측면에서도 탁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김환기가 뜨는 더 중요한 이유는 체계적인 작품 관리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개 작품 진위 판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가가 세상을 떠나면 미술시장에서 위작 거래가 크게 늘어난다. 반면, 김환기의 경우 작고 후에도 부인 고 김향안 여사가 설립한 환기재단이 작품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왔다. 박수근ㆍ이중섭부터 천경자ㆍ이우환에 이르기까지 인기 작가의 위작 문제로 미술시장은 지금 혹독한 진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김환기의 작품은 도록이나 자료 등을 통해 검증이 가능해 위작 시비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작품의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신뢰성이 작품성과 만나 엄청난 상승작용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환기로 대표되는 한국 단색화에 대한 국내외 관심도 한몫을 한다. 단색화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미술의 추상성을 동양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조광석 경기대 교수는 “단색화는 감상하기에 좋은 작품”이라며 “단색화의 출현은 시대적인 산물이었으나 최근 단색화의 유행은 컬렉터들의 주관적인 판단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윤익영 창원대 교수는 “영상이나 이벤트성 설치 등이 주는 순간적 자극에 대한 반사 작용”도 이유로 거론했다. 이러한 관심을 반영해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김환기가 군 복무 중이던 홍익대 제자에게 보낸 편지 등 추상미술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는 아카이브전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를 5일부터 10월 29일까지 서울 홍지동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연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국내 경매 낙찰 최고가
작가/작품명/낙찰가/경매연도/경매업체
1. 김환기, 무제 27-Ⅶ-72 #228 (1972), 54억, 2016년 6월, K옥션
2. 김환기, 무제(1970), 48억6,750만원, 2016년 4월, 서울옥션
3. 김환기, 19-VII-71 #209(1971), 47억 2,100만원, 2015년 10월, 서울옥션
4. 김환기, 무제 3-V-71 #203 (1971), 45억6,240만원, 2016년 5월, 서울옥션
5. 박수근, 빨래터, 45억2,000만원, 2007년, 서울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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