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들 ‘무슬림 적 죽이러 왔다’
수도 다카 외교가 식당서 인질극
일본인 7명, 이탈리아 9명 등 20명 살해
평온한 금요일 저녁식사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1일 오후 8시 45분경(현지시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외국인ㆍ부유층 거주지역인 굴샨지역 내 식당 ‘홀리 아티즌 베이커리’에 총칼로 무장한 청년 7명이 들이닥쳤다. 12시간 뒤인 2일 오전 8시 30분 경찰 특수부대가 무장집단을 제압할 때까지 현장은 이슬람 극단주의가 지배하는 무법지대였다. 살아남은 인질들은 “이슬람 경전 쿠란을 암송하지 못할 경우엔 무자비하게 죽였다”고 증언했다.
방글라데시 일간지 다카트리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테러범들은 “우리는 벵골인(방글라데시 최대 민족)을 해치지 않는다. 비무슬림과 무슬림 세계를 파괴하는 적들을 죽이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생존자 하스낫 카림에 따르면 테러범들은 방글라데시인 무슬림들에게 쿠란을 암송하라고 명령한 후 구절을 읊은 이들에겐 저녁을 내줬다. 식당 웨이터 아슈라프도 “내가 무슬림이어서 그들이 날 살려줬다”고 증언했다. 그와 통화한 동료 시라줄 리톤에 의하면 아슈라프는 총구를 겨눈 테러범에게 살려달라 빌었고 테러범이 “무슬림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해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비무슬림 외국인들의 운명은 더욱 처참했다. 특수부대가 현장을 제압한 후 발견한 인질 사망자는 모두 20명인데 이들 중 대다수는 인질극 초기에 이미 숨진 상태였다. 테러범들은 인질들은 사살한 후 시체를 칼로 난도질하는 잔인함까지 보였다. 요리사 수미르 바라이는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중앙 홀로 끌려나갔을 때 이미 6~7명의 외국인이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다카트리뷴과 인터뷰한 알람(가명)은 함께 숨어있던 일본인 1명이 그 자리에서 사살됐다고 말했다. 그는 “옷이 온통 축축했고 피 냄새가 가득했다”며 테이블 아래 엎드린 채 공포 속에서 밤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테러범들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진압마저 쉽지 않았다. 경찰은 습격 30여분 후 현장에 도달했지만 테러범이 사제 수류탄을 던지는 등 강력히 저항해 20여명이 부상을 입은 채 후퇴했다. 중태에 빠진 경찰 2명은 끝내 숨졌다. 수도 다카에서 북동쪽으로 약 250㎞ 떨어진 실렛에 주둔하던 특수부대가 긴급 공수돼 이튿날 오전 7시 30분부터 진압작전에 돌입했다. 바라이에 따르면 테러범들은 진압이 임박했음에도 차분하게 “우리는 떠난다. 천국에서 보자”고 말했다.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는 작전부대가 테러범 7명 중 6명을 현장에서 사살, 1명은 생포했고 인질 13명을 구출했다고 밝혔다. 살해당한 인질들은 이탈리아인 9명, 일본인 7명, 방글라데시인 2명, 인도인 1명, 방글라데시계 미국인 1명이었다. 희생당한 인질 가운데 이탈리아인들이 많아 다카에 거주하는 200여명의 이탈리아인 공동체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인도인 타리시 자인과 미국인 아빈타 카비르, 방글라데시인 파라즈 호사인은 미국 대학교 출신이거나 재학 중이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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