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정부 때부터 20년 비공식회의
나라 경제 방향타, 기업 운명 결정
“관치의 온상” “현실적으로 필요”
대우조선 사태 여파로 존폐 위기
회의 존재, 내용 비밀 문서로 남겨
일정 기간 후 공개하는 방식이
권한과 책임 불일치 해소할 수 있어
문민정부 이후 막후에서 경제정책을 주물러 온 서별관회의(비공개 거시경제정책협의체)가 20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의 폭로(“대우조선해양 지원은 서별관회의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로 음지를 지향하던 서별관회의가 햇빛 아래 고스란히 드러나며, 그 비밀주의와 폐쇄성에 대한 공격이 거세다.
보이지 않으나 강력한 손
서별관회의는 청와대 서쪽 별관에서 열리는 회의다. 경제부총리, 청와대 수석, 경제부처 장관 등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핵심관료들이 참석하며 때로는 한국은행 총재나 국책은행장도 참석한다. 서별관회의가 시작된 것은 1997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다. 강경식 당시 부총리가 쓴 회고록 ‘강경식의 환란일기’를 보면 “97년 5월 4일 저녁 한은 총재(이경식), 청와대 경제수석(김인호)과 내가 모여 서별관에서 회의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서별관회의 전신은 장기영 전 부총리(64~67년 재임)가 시작한 녹실회의(경제장관회의)다. 회의 장소인 경제기획원 접견실 가구와 양탄자 등이 녹색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김영삼 정부 이후에도 서별관회의는 조정ㆍ결정 기능을 적극 수행했다. 김대중 정부 때 대우차 제일은행 하이닉스의 운명이 결정됐고, 노무현 정부 때도 여기서 조율된 안건이 국무회의에 올라갔다. 이명박 정부 때는 매주 화요일 열릴 정도로 활성화됐다.
20년 가까이 한국 경제 방향타를 결정하는 역할을 했음에도 서별관회의는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져 왔다. 개최 사실 자체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으며, 당연히 회의록도 작성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고 수년이 흘러서야 전직 경제관료의 회고록 등을 통해 일부 드러난 적이 있지만, 이마저도 집필자에게 유리하게 윤색됐을 가능성이 높다.
“관치 온상” 철폐 논란
이렇듯 막중한 권한을 가지면서도 철저한 비밀주의로 일관한 서별관회의에는 항상 ‘관치의 온상’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임명직 공무원 몇 명이 나라 경제 앞날이나 기업의 운명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뒤, 그 뒷감당 없이 밀실 속으로 숨어 버리는 행태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주요 현안마다 서별관회의에서 논의하고 비공개로 하면 국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은 무용지물이 된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 지원을 둘러싼 진실게임 역시 결국엔 이런 서별관회의의 폐쇄성에서 비롯됐다. 홍기택 전 회장의 서별관회의 결정 주장에 대해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 당시 참석자들은 “충분한 협의가 있었다”고 반박하지만, 기록물이 없는 상황에서 누구 말이 맞는지 확인할 수 없는 탓이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 등은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인 서별관회의를 폐지하거나 아예 다른 공개협의체가 그 역할을 담당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불투명하고 무책임한 의사결정이 계속되는 서별관회의를 폐지하고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되는 공식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한ㆍ책임 불일치 어떻게
서별관회의 참석 당사자나 전ㆍ현직 관료들은 비공개 회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폐지론을 반박한다. 4일 임종룡 위원장은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중병에 걸린 기업을 살리지 못했다고 책임을 물으면 아무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비공개회의를 모두 공개하라고 하면 그 회의에선 아무도 발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전직 경제관료 A씨 역시 “하이닉스 LG카드 등 칭찬받는 구조조정도 서별관회의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결과만으로 과정 전체를 부정하는 건 잘못”이라고 항변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비공식협의체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논의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경제정책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를 폐지하자는 것은 구조조정 중에 구조조정본부를 없애자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회의의 존재와 내용을 문서기록으로 남기고, 비밀 내용은 시간이 지난 뒤 비밀을 해제해 사후 평가를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서별관회의 참석자였던 전직 관료 B씨도 “개개인의 발언을 기록해두고 일정기간 뒤 공개를 하는 것이 현실적인 절충안”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벤 버냉키 당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수시로 비공개 회의를 했는데 항상 기록을 남겼다. 또 미국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퇴진한 직후, 76년 회의공개법(Government in the Sunshine Act)을 제정해 연방기관 모든 회의에 ▦회의과정 공개 ▦회의 일정 사전공지 등 의무를 강제하고 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김용식 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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