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를 옆에 낀 소년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두 주먹을 꼭 쥐었다. ‘반공소년 이승복’, 1968년 무장공비에 의해 살해된 아홉 살 어린이는 반세기가 지난 오늘도 결연한 모습으로 공산당에 항거하며 서 있다. 그러나 비 내리는 교정에서 이 ‘반공영웅’을 알아보는 학생은 없다. 정권 차원의 반공교육에 활용돼다 교과서에서 사라진 지 19년, 아이들은 이승복을 유명한 작가나 도시락 폭탄을 던진 누군가로 생각하며 그 앞을 지나친다. 동상을 겹겹이 감싸고 있던 반공의 이데올로기는 오래된 페인트 칠 마냥 벗겨졌고 차가운 시멘트 몸뚱어리만 낙오된 역사의 잔재로 남았다.
시골 폐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이 아직 일선 학교에 남아 있다. 본보가 인천 강화군을 포함한 경기 북부 10개 시군 183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승복 동상이 있는 곳이 26개교에 달했다. 1970~80년대 동상 건립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점을 감안하면 전국 수백 개 학교에 이승복 동상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신증축 등으로 인해 교내 조형물을 철거해 온 서울의 경우도 일부 학교에서 이승복 동상의 존재가 확인됐다.
문제는 매일 동상을 바라보는 학생들조차 이승복이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승복 동상이 남아 있는 5개 학교의 고학년 학생 120명을 면접 조사해 보니 ‘반공소년 이승복’을 알고 있는 학생은 단 4명에 불과했다. 모른다고 대답한 116명 중에는 “우리 학교 졸업생”이라거나 “몇 학년 몇 반인데요? 혹시 이승복 아버님이세요?”라고 되묻는 경우도 있었다. 학교의 주인이라는 학생들조차 그 의미를 모르는 동상이 교실 앞에 세워져 있는 기이한 현상이 일상처럼 이어지고 있다.
경기ㆍ인천 초등교 183곳 중 26곳 남아 있어
학생 120명에 물으니 “이승복 안다” 4명뿐
요즘 초등학생들이 이승복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산골 소년의 ‘반공영웅화’가 국가 차원으로 추진된 7,80년대 이승복 사건은 국민(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일방적 주입을 당연시 했던 시절, 참혹한 비극의 희생자 이승복은 수많은 초등학교에서 시멘트 조형물로 재생산 됐다. 1990년대 들어 반공교육이 민족공동체를 강조하는 통일안보교육으로 전환되면서 교과서 속 분량이 크게 줄었고 1997년부터는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죽어갔다는 소년의 이야기는 민주화와 냉전 종식이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한 순간에 용도폐기 됐다.
70ㆍ80년대 반공교육에 활용돼다
97년 교과서에서 완전히 삭제
과거 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냉전의 상징물이 21세기 교육 현장을 지키고 있는 현실은 분명 시대착오다. 학교에 세운 동상 자체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박진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이승복 동상은 박정희 정권이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에 전달할 가치와 이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지나친 간섭을 시도한 증거”라며 “시대에 맞지 않는 동상이 학교에 세워져 있고 학생들은 그 동상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현실이야말로 동상 자체가 지닌 교육적 효과가 전혀 없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경기 지역의 A초등학교 교감 역시 “요즘 신설되는 학교에 동상을 세우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며 동상의 교육적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구시대 유물인 이승복 동상은 아예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동상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공감하고 납득하는 기념비적인 표상으로 존재할 때 그 의의가 있는데 과연 이승복이라는 인물이 그러한지 의문이다. 여전히 이념적 논란이 있는데다 구성원 대부분이 동상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만큼 청산해야 한다” 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은민 경기도 교육청 부대변인은 “교육청의 공식 입장을 정리 중”이라면서 사견임을 전제로 “이승복 동상이 일그러진 반공교육의 상징임이 분명하나 그 또한 역사의 한 부분이므로 동상의 처리를 교육청이 일괄적으로 결정하는 것 보다 학교 구성원이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가장 민주적인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사자 격인 학교는 동상을 건드리는 것 자체를 난감해 하는 분위기다. 경기 지역의 B초등학교 교감은 “교내의 동상 하나하나가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의 기증으로 세워진 데다 시골 학교의 경우 운영에 주민들의 참여가 큰 만큼 학교가 임의로 처리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동상 자체가 교육적 효과 전혀 없다”
“대부분 의미 몰라… 청산해야”
“학교 구성원이 토론 통해 결정을”
“그나마 동상 남아 있어 다행스럽다”
이승복의 유품과 일대기 등을 통해 안보교육을 이어 온 이승복기념관 측은 동상의 존치 여부에 대한 의견 대신 “소년의 처참한 죽음이 점점 잊혀지는 현실에서 그나마 동상이 남아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북한 핵 개발로 안보현실이 더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아이들의 안보 및 민족의식 교육을 보다 체계적으로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원론적 입장만을 밝혔다. 박진규 교수는 “이승복 동상을 섣불리 철거하기보다는 우리 안보 교육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승복은 누구?” 질문 던져보니…
지난달 30일부터 이틀간 이승복 동상이 있는 5개 초등학교의 고학년 학생 120명을 대상으로 “이승복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모른다”라고 대답한 학생은 116명, 아이들은 교정에서 본 동상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승복이라는 인물을 나름대로 정의했다. 황당한 대답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또한 분단이 만든 사건을 정권이 필요에 따라 해석하고 이용하고 주입해 온 우리 현대사의 씁쓸한 유물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학생들의 이름과 학교는 밝히지 않는다.
“우리 학교를 대표하는 상징 같아요.”
“우리 학교 졸업생이요.”
“책을 항상 옆구리에 끼고 있으니 공부 잘하고 똑똑한 사람 같아요. 나도 공부 열심히 해야지.”
“학교에서 우리더러 책을 많이 읽으라고 세운 것 같아요.”
“책 쓰는 유명한 작가요.”
“도시락 폭탄 던진 사람이요. 옆에 낀 도시락을 학교로 던져서 터뜨릴 것 같은 상상도 했어요.”
“한석봉 아닌가요?”
“김정호처럼 지도 만드는 사람.”
“열심히 공부해서 업적을 이룬 똑똑한 독립투사 같아요.”
“별로 안 궁금해요.”
“몇 학년 몇 반이죠?
누군지는 몰라도 오랫동안 보아 온 동상에 친근감을 느끼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승복 동상이 없어진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나”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없어지면 왠지 허전할 것 같아요.”
“우리가 책을 많이 읽어야 하니까 없어지면 안 되죠.”
“점심시간에 자주 봐왔으니 없으면 점심 먹을 때 허전할 것 같아요.”
“동상이 없어지기 전에 그 분의 업적을 빨리 배우고 알아야 할 것 같아요.”라고도 대답했다.
학생들의 대답을 듣고 올려다 본 소년의 동상은 군데군데 벗겨진 페인트 옷을 입은 채 동떨어진 모습으로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신재훈 인턴기자(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