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있는 단골 커피집에서 기분 좋게 칼럼을 쓰고 있다. 독일축구협회와 유럽축구연맹에서 보내준 지도자코스 성적표가 우편으로 도착했는데 재시험 없이 A코스로 직행할 수 있는 점수가 나왔다.
성공이다. 정말 홀가분하다.
오늘부터는 칼럼을 쓸 때 선수들의 이름을 풀 네임으로 써야 한다. 지난 번 칼럼에서 평소처럼 이름만 써서 보냈다가 보완 과정에서 착오가 생겨(윌리엄 카르발류를 히카르두 카르발류로 잘못 표기) 예리한 독자들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실력(?)있는 독자들이 내 칼럼을 읽어줘서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당황했다. 내가 보기보다 소심해서 평소 같으면 얼어붙었을 텐데 오늘은 그 동안 긴장하며 기다리던 성적표 덕분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오늘은 프랑크푸르트 날씨도 아주 좋다.
커피도 맛있다.
① 독일 주축선수 이탈, 분위기 좋은 프랑스
② ‘공격축구’ 프랑스, 다양한 루트 이용할 것
③ 무엇보다 체력소모 적어 프랑스 유리
그러나 프랑스와 준결승을 앞둔 독일의 분위기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한국시간 7월 8일 오전 4시)
많은 감독들이 축구는 분위기 싸움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프랑스와 독일의 4강을 보고 하는 말 같다. 두 팀은 준결승까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프랑스는 조별리그와 16강에서 홈 관중들을 만족시킬 만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반면 독일은 차근차근 틀을 잡아가며 점점 더 우승후보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8강전 이후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독일은 이번 대회 가장 무서운 팀으로 평가 받던 이탈리아를 꺾었지만 중앙 수비수 마츠 훔멜스(28ㆍ바이에른 뮌헨)가 경고누적으로 빠지고 스트라이커 마리오 고메즈(31ㆍ베식타스)도 부상으로 뛸 수 없다. 그것도 모자라 미드필드의 핵심 사미 케디라(29ㆍ유벤투스)까지 다쳤다. 정말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반대로 프랑스는 유로 내내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줬던 아이슬란드를 대파하며 자신감이 한껏 올랐다.
프랑스의 경기력을 보며 반신반의 하던 홈 팬들도 대량 득점을 터뜨린 자국대표팀을 갑자기 믿기 시작하는 듯하다. 이러다 보니 준결승을 앞두고 오히려 프랑스가 유리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독일은 여러 가지로 상황이 어렵다.
징계와 부상으로 잃은 3명의 주축 선수 중 가장 뼈아픈 건 최고의 컨디션을 보였던 고메즈의 공백일 것 같다.
지금 독일은 고메즈 자리를 완벽하게 메워줄 마땅한 자원이 없다. 첫 경기에서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나선 마리오 괴체(24ㆍ바이에른 뮌헨)는 부지런히 움직여주지만 골 찬스를 만들지 못해 상대에게 위협을 주지 못했다. 나는 이번 대회에서 아직 득점이 없는 토마스 뮬러(27ㆍ바이에른 뮌헨)가 가장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골은 못 넣었지만 매 경기 많은 찬스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괴체보다는 확실히 낫다. 뮬러는 지난 시즌 바이에른 뮌헨에서 팀 내 득점 2위(20골)를 했고 월드컵(2010년 남아공 5골) 득점왕까지 거머쥔 선수다. 하루아침에 골 넣는 법을 까먹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뮬러의 골만 터져 준다면 독일이 유로를 우승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모든 독일 팬들은 4강에서 뮬러의 슛이 꼭 골망을 흔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중앙 수비 훔멜스의 공백은 베네딕트 회베데스(28ㆍ샬케04)와 시코드란 무스타피(24ㆍ발렌시아) 중 한 명이 채울 것이다. 이번 유로에서 독일의 대회 첫 골을 선사한 무스타피는 이미 첫 경기에서 부상으로 출전을 하지 못한 훔멜스를 대신해 나온 적이 있다. 회베데스는 대회 초반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하다 요슈아 키미히(21ㆍ바이에른 뮌헨)가 그 자리를 차고 들어가며 벤치로 밀렸다. 그러다 지난 이탈리아와의 8강에서 요하임 뢰브(56) 감독이 스리백으로 전술 변화를 주면서 다시 중앙 수비로 기용이 됐다. 두 선수 다 훔멜스의 빈자리를 100% 채울 수는 없겠지만 경험이 풍부하고 이번 대회에서 충분히 실전 감각을 익혔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
마지막은 미드필드의 엔진 역할을 해주던 케디라의 부상 결장을 누가 메울 수 있느냐다. 당연히 주장인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32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출전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문제는 슈바이니(슈바인슈타이거의 애칭)도 이탈리아와 8강에서 지난 시즌 자신을 계속 괴롭혔던 무릎을 또 다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팀 훈련도 참가하지 못하고 사이클만 타는 모습이 많은 독일 팬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뢰브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명확하게 말했다.
“나는 예전에 몸 상태가 100%가 아닌 선수를 기용한 적이 있다. 그것이 절대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팀을 위해서 모든 걸 쏟아 부을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닌 선수는 절대 다시 기용 하지 않겠다.”
과연 슈바이니의 몸 상태가 경기 당일까지 얼마나 좋아질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도르트문트의 율리안 바이겔(21)을 한번쯤 케디라 대신 투입해 봤으면 한다. 지난 시즌 도르트문트의 후반기 모든 경기를 다 봤다. 경기장에서든 중계로든 도르트문트 경기를 계속 관전했다. 볼 때마다 바이겔이 아주 많은 가능성을 지닌 선수라고 느꼈다. 어린 나이지만 경기를 읽고 운영하는 능력이 경기를 할 수록 점점 더 좋아졌다. 그가 유로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게 한국 올림픽대표팀에는 정말 다행이다. 유로에 참가하면서 바이겔이 리우올림픽에는 뛰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독자들도 바이겔이 출전하면 눈여겨보시길. 앞으로 독일 중원을 이끌 아주 많은 재능을 지닌 뛰어난 선수다.
이처럼 독일이 최상의 전력으로 팀을 꾸리지 못하는 반면 프랑스는 기세가 올랐다.
아이슬란드와 경기에서 공포의 삼각편대인 올리비에 지루(30ㆍ아스널), 디미트리 파예(29ㆍ웨스트햄), 앙투안 그리즈만(25ㆍ아틀레티코 마드리드) 3명이 모두 득점하며 무서운 공격 축구를 보여줬다. 거기다 프랑스에서 가장 기대를 걸고 있던 폴 포그바(23ㆍ유벤투스)까지 골을 넣으며 그들의 득점 루트는 너무 다양해졌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무기다. 독일도 이 점을 경계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공격 루트가 정해져 있었다. 중앙의 투톱을 통해 모든 공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프랑스는 다르다.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가 훨씬 더 많다. 나는 이전 칼럼(전 세계 팬 등에 업은 ‘얼음왕국’ 아트사커도 넘을까)에서 프랑스가 어떤 전략을 가지고 경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 적이 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찾은 듯하다.
프랑스는 스스로 볼을 점유하고 경기를 풀어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상대가 완전히 내려서서 밀집 수비를 하면 그걸 뚫는 것에 큰 어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독일과의 경기에서는 프랑스의 장점인 역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질 것 같다. 독일이 점유율 축구를 할 때 뒷공간이 넓어지면 프랑스는 그리즈만과 파예, 킹슬리 코망(20ㆍ바이에른 뮌헨) 같은 선수들이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빈 곳으로 찾아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예선부터 코너킥, 프리킥 같은 세트플레이 상황에서는 지루(192cm)의 큰 키를 이용한 득점으로도 재미를 봤다.
프랑스가 유리한 또 하나 이유는 아직까지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경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회를 치르는 동안 모든 경기에서 선수들이 혼신을 다해 100%의 힘을 다하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만나면 독일이나 프랑스 정도의 능력을 가진 선수들은 본인들이 조절하면서 경기를 한다. 3~4일 간격으로 계속 경기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대진운이 나빠서 매 경기 체력적 한계까지 가야 하는 경기가 계속 되면 언젠간 경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프랑스는 아이슬란드와 8강에서 체력 안배를 했다. 이탈리아를 상대로 120분 전력을 쏟아야 했던 독일보다는 아무래도 유리하다.
경기 전에는 늘 무수히 많은 예상과 말이 오간다. 분명 프랑스는 아직까지 진짜 강호라고 불리는 팀과 단 한 차례도 경기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 8강에서 아이슬란드에 5골을 몰아쳐 기대치를 한껏 올려놨다.
독일은 최상의 전력은 아니지만 경기력 면에서는 프랑스를 분명 앞선다. 이번 대회 최고의 공격진이라 해도 무방하다.
수비에서 늘 문제점을 노출하며 약체 아이슬란드에도 2실점한 프랑스와 참가 팀 중 수비가 가장 단단하지만 중요한 선수들의 경고 누적과 부상 공백을 메워야 하는 독일의 준결승.
정말 기대가 된다.
두 팀이 어떤 전략과 전술을 들고 나올지 궁금하다.
프랑크푸르트 크론베르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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