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멍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아니 하기가 싫었다.
프랑스가 독일을 2-0으로 꺾고 자국에서 열리는 유로 2016 결승에 진출했다. 프랑스는 절정의 골 감각을 보여주고 있는 앙투안 그리즈만(25ㆍ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2골에 힘입어 개최국 우승 꿈에 한발 더 다가섰다.
반면 독일은 너무 큰 아쉬움을 남겼다. 패한 것도 그렇지만 이번 대회에서 가장 좋은 축구를 보여준 팀이 떨어졌다는 것이 더 안타깝다. 독일 축구 팬들도 이런 좋은 경기력을 인정하기에 패배 이후 오히려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사람마다 축구를 보는 기준은 다양하다. 축구의 색깔, 경기를 이기는 방법 등은 저마다 다르다.
나는 예전에 철저한 승리주의자였다.
내용과는 관계없이 경기를 이기는 팀이 제일 좋은 팀이고 제일 강한 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새로운 감독이 된 조세 무리뉴(53)를 좋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나는 좋은 선수를 가지고 있다면 상대를 압도하고 경기하는 팀을 좋아한다. 한마디로 질 때 지더라도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경기를 하는 축구를 선호한다.
이번 독일의 패배도 그렇다.
경기 내용, 찬스, 볼 점유율 등 많은 부분에서 독일은 프랑스를 압도했다. 단, 제일 중요한 득점에서 프랑스가 독일을 이겼다.
우승을 하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 단순히 실력만 가지고는 절대 큰 대회에서 정상에 오를 수 없다.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30ㆍ바이에른 뮌헨)가 파울을 했지만 주심이 그냥 넘어가면서 아르헨티나에 페널티킥을 주지 않았다. 0-0 상황에서 아르헨티나가 페널티킥을 얻었다면 독일이 우승할 수 있었을까.
독일과 프랑스의 준결승에서는 정반대로 심판이 전반 종료 직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32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핸드볼을 반칙으로 인정했고 그리즈만이 페널티킥을 성공했다. 이처럼 토너먼트에서 수준이 비슷한 팀들이 만나면 작은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프랑스는 예상대로 수비를 탄탄히 하면서 역습의 기회를 엿봤다. 독일이 주도권을 잡고 높은 점유율 축구를 하면서 상대를 압도했지만 프랑스는 독일이 가지지 못한 아주 강한 무기 하나를 가졌다.
바로 확실한 스트라이커다.
누구나 알지만 축구는 골을 넣기 위한 게임이다. 패스를 많이 하고 볼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는 건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바로 득점이다. 독일은 이런 측면에서 부상으로 빠진 스트라이커 마리오 고메즈(31ㆍ베식타스)의 공백이 뼈아팠다. 반면 프랑스는 그리즈만의 컨디션이 최고조에 올라섰다.
스트라이커들은 한번 분위기를 타면 경기 중 가만히 서 있어도 골을 넣기 좋게 공이 발 앞에 떨어진다고 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스트라이커를 보던 시절 단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솔직히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리즈만이 독일을 상대로 넣은 두 번째 골을 보니 그가 지금 제대로 탄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프랑스 선수들의 투혼도 인상적이었다.
프랑스는 자신들에게 많은 찬스가 오지 않을 걸 알았다. 다 같이 수비를 하지 않으면 독일을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공격 성향이 강한 올리비에 지루(30ㆍ아스널)와 그리즈만 그리고 디미트리 파예(29ㆍ웨스트햄)까지 90분 내내 수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프랑스가 정말 간절히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결승에 올라가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다.
독일은 악재가 한 번에 너무 많이 겹쳤다. 고메즈와 사미 케디라(29ㆍ유벤투스), 마츠 훔멜스(28ㆍ바이에른 뮌헨)의 결장도 모자라 후반에는 팀의 리더이자 중심인 제롬 보아텡(28ㆍ바이에른 뮌헨)까지 부상으로 빠지면서 전력이 약화 됐다. 독일이 아무리 좋은 선수를 보유하고 있어도 4명의 중요한 선수가 한꺼번에 빠진 공백을 메우기란 벅차 보였다. 결국 유로에서 터지지 않은 토마스 뮬러(27ㆍ바이에른 뮌헨)골 침묵도 탈락에 한 몫 했다.
프랑스의 공격은 강했다. 무엇보다 경기를 치르면서 선수들이 자신감을 찾아 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즈만이라는 무서운 공격수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그 방법까지도 찾았다. 이번 대회 들어 처음으로 강팀을 상대한 프랑스는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걸 완벽하게 구사했다.
지난 번 칼럼에서도 말했지만 프랑스 선수들은 주도권을 잡지 않고 역습을 펼칠 때 더 편해 보였다. 그래야 그리즈만과 파예, 폴 포그바(23ㆍ유벤투스), 무사 시소코(27ㆍ뉴캐슬)같은 스피드가 뛰어난 선수들이 상대의 뒷 공간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과의 결승은 분명 또 다른 경기가 될 것이다. 포르투갈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주도권을 잡고 경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준비를 잘 하지 않으면 예선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반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독일은 패배 이후에도 당당하고 자신에 차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부럽다. 지난 6개월을 독일에서 지내며 독일 축구가 아주 단단하다는 느낌을 가까이서 받았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루카스 포돌스키(31ㆍ갈라타사라이)와 슈바인슈타이거는 대표팀 은퇴가 확실시 된다. 그러나 독일은 이미 다음 세대 선수들이 준비가 돼있다. 브라질 월드컵 이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필립 람(33ㆍ바이에른 뮌헨)의 공백을 요슈아 키미히(바이에른 뮌헨)라는 스물 한 살의 어린 선수가 채웠듯 슈바인슈타이거의 빈자리에도 케디라, 토니 크로스(26ㆍ레알 마드리드), 엠레 찬(22ㆍ리버풀) 그리고 이번 대회에 출전은 못했지만 율리안 바이겔(21ㆍ도르트문트)같은 좋은 자원이 넘쳐 난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열린 유로 2000에서 독일은 최악의 성적(조별리그에서 1무2패로 꼴찌)을 거둔 뒤 유소년시스템부터 체계적으로 바꿔가면서 선수와 지도자 교육을 새롭게 다시 시작 했다. 뿌리부터 체계적으로 만들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지금 유로 4강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하고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 이유다. 분명 그들은 이번 대회에서 잘못된 것들을 분석하고 보완할 것이며 더 발전 시켜 갈 것이다. 경기를 패하고 아쉽게 탈락하고도 팬들에게 박수 받으며 자신 있게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독일 축구의 힘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또 잊어선 안 될 한 가지는 이번 대회 참가국 중 독일대표팀이 잉글랜드와 함께 평균 나이가 제일 어렸다는 점이다. 그들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아…. 그래도 나는 독일의 탈락이 슬프다….
프랑크푸르트 크론베르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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