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초반 칼럼에 “좋은 공격으로는 경기를 이길 수 있고, 좋은 수비로는 우승을 할 수 있다”는 명장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말을 쓴 적이 있다.
유로 2016에서도 수비를 잘하는 팀이 우승을 했다.
포르투갈!!!
우선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포르투갈에 축하를 보내고 싶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포르투갈은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ㆍ레알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팀이 하나가 됐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상대를 정말 어렵게 만드는 경기 운영으로 결국 우승컵을 들었다.
기록이 보여주듯 포르투갈은 화려한 공격 축구로 우승을 이뤄낸 것이 아니다. 전 경기를 통틀어 90분만 놓고 봤을 때 웨일스와 4강만 2-0으로 이겼고 나머지는 모두 무승부였다. 조별리그에서는 탈락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페르난도 산토스(62) 포르투갈 감독은 아주 수비적인 전술을 택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결승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포르투갈이 정말 결승에 올라갈 자격이 있는 팀인지를 묻기도 했다.
그렇다.
어떤 대회든 경기를 잘하는 팀, 공격적인 전술과 전략으로 나서는 팀이 지면 어딘가 모르게 아쉽다.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져서 탈락할 때도 그랬고 예전에 FC바르셀로나가 인터밀란에 패할 때도 역시 마음 한구석에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경기 내용이 어떻든 포르투갈의 유로 우승은 다시 한 번 수비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호날두가 전반 25분 만에 부상으로 교체되면서 경기는 포르투갈에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예상대로 프랑스가 주도권을 잡았다. 전반 초반 앙투안 그리즈만(25ㆍ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헤딩을 비롯해 어쩌면 이날 거의 인생 경기를 보여준 무사 시소코(27ㆍ뉴캐슬)의 슈팅까지 프랑스는 홈 관중 앞에서 빨리 경기를 결정짓고 싶어하는 듯했다.
포르투갈은 주장이자 정신적 지주 호날두가 빠지자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는 듯 하더니 오래지 않아 특유의 끈질긴 밀집 수비로 프랑스의 빠른 템포를 잠재웠다.
경기 전 걱정했던 대로 프랑스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초초해졌다. 포르투갈의 수비를 뚫을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즈만도 자신의 스피드와 기술을 활용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자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디디에 데샹(48) 프랑스 감독은 후반 킹슬리 코망(20ㆍ바이에른 뮌헨)과 안드레 피에르 기냑(31ㆍ티그레스)을 투입하면서 활로를 찾았다. 코망은 특유의 빠른 드리블 돌파로 포르투갈 수비를 들었다놨다 했다. 특히 그리즈만 머리로 올려준 크로스는 아주 날카로웠다. 종료 직전 기냑이 포르투갈 수비수 페페(33ㆍ레알 마드리드)를 완전히 따돌린 뒤 때린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오면서 자국 팬들 앞에서 영화 같은 우승 스토리를 쓰려던 프랑스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연장에 들어가자 부상 때문에 라커로 들어갔던 호날두가 다시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 무릎을 붕대로 고정시킨채 팀 동료들을 응원하고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그는 벤치에 앉았다. 주장이 다시 나와서인지 연장에서는 오히려 포르투갈이 더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기 시작 했다. 심판의 잘못된 판정으로 얻어낸 프리킥에서 라파엘 게레로(23ㆍ로리앙)의 슛이 골대를 맞고 나와 무릎을 다친 호날두를 펄쩍 뛰게 만들었다.
흔히 사람들은 결승전 같은 큰 경기는 스타를 위한 무대라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큰 경기가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슈퍼스타가 부상으로 팀을 도울 수 없을 때 경기장 안에서는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결국 연장 후반 포르투갈의 에데르(29ㆍ릴)가 이번 대회의 마지막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전까지 거의 출전하지 못했던 그는 그림 같은 슈팅으로 조국에 사상 첫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안겼다.
포르투갈이 1-0으로 앞서자 포르투갈 벤치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산토스 감독 옆에 또 한 명의 감독이 등장했다.
다름 아닌 호날두였다.
그는 팀이 앞서기 시작하자 벤치에 앉지를 못했다. 산토스 감독과 똑 같은 몸짓을 하며 계속해서 코칭 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동료들에게 손짓으로 지시를 내리고 힘을 불어 넣었다. 마지막에는 아예 코칭 존을 벗어나 프랑스 벤치 앞까지 갔다. 부상으로 잠시 경기장을 나온 동료에게 조금만 힘내라는 말을 건네고 재빨리 안으로 들여보내기도 했다.
호날두가 얼마나 우승을 갈망하는 지 그 간절함이 느껴졌다.
종료휘슬이 울리며 호날두는 소속 팀 뿐 아니라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마지막 꿈까지 이뤘다.
자국 국민들에게 유로 우승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 주고 싶었던 프랑스는 우려대로 포르투갈의 밀집 수비를 뚫지 못해 아쉬운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경기를 잘하는 팀이 우승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이 보여준 집념과 이기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호날두의 예상치 못한 공백을 모든 선수들이 역할 분담해 메우는 모습은 박수 받기에 충분했다.
다시 한 번 포르투갈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PS) 칼럼을 쓰고 있는 지금은 독일 시간으로 새벽 1시 30분. 아침 8시에 차를 몰고 슈투트가르트로 가야하는데 거의 잠을 못 잘 것 같다. 흑흑.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리는 U-20 월드컵 유럽지역 예선을 보기 위해서다. 경기는 2주 동안 열리는데 다 볼 수는 없고 1주일 정도 관전할 계획이다. 유럽 축구의 미래를 확인할 생각에 조금 흥분된다. 내년 월드컵(2017 U-20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열리니 더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차범근 부위원장님!!(U-20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열심히 보고 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프랑크푸르트 크론베르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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