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상점가 모두 닮아가는 건
대자본 진출의 영향도 있지만
온라인 쇼핑 문화 확산도 큰 몫
도시의 다양한 삶 유지되도록
선출직 관료에 끊임없이 압력을
“도시의 삶은 그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을 보호함으로써 완성된다. 거주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면 도시 경제의 부흥도 불가능하다.”
낙후된 도심의 번성으로 원주민이 임대료 상승을 감당 못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최근 국내에서 화두로 떠올랐지만 영미권에서는 이미 오랜 사회문제 중 하나다. 뉴욕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비롯해 도시재생을 연구해 온 샤론 주킨 뉴욕시립대 대학원 사회학과 교수가 처음 한국을 찾았다. 그는 ‘무방비 도시’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소개된 ‘네이키드 시티’ 등의 저작물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의 문화적 함의를 밝혀 주목 받았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문화정책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한 그를 만났다.
“서울에 카페가 많아 놀랐다”는 주킨 교수는 “카페의 확산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요한 징후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정 지역에 ‘젠트리피케이션의 ABC’, 즉 미술관(Art gallery)과 부티크(Boutique), 카페(Cafe)가 늘기 시작하면 그곳이 원래 가진 캐릭터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상점가는 지역 변화의 가장 가시적인 척도다. 개개인이 운영하던 작은 상점들이 대자본의 쇼핑가로 변모하면서 도시의 전 지역, 더 나아가 뉴욕과 런던, 서울의 거리가 모두 유사해지는 게 젠트리피케이션의 한 단면이다. 그는 “언뜻 전세계인의 소비 취향이 모두 같아졌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각 지역이 본래 지녔던 영혼을 잃고 있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주킨 교수는 올해 초 뉴욕과 캐나다 토론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독일 베를린, 중국 상하이, 일본 도쿄 등 6개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다룬 신간 ‘글로벌 시티즈, 로컬 스트리츠’를 썼다. 뉴욕 외 5개 도시의 지역 연구자들과 함께한 프로젝트다. 그는 “이제 임대료를 내 가며 자영업을 해 먹고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그는 “6개 도시가 공히 심각한 임대료 상승 문제를 겪고 있지만 시 정부가 강제로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기는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시 정부와 부동산사업가뿐 아니라 문화 등 복합 요인 때문에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각 도시 상점가가 모두 닮아가는 것은 대자본 진출의 영향도 있지만 온라인 쇼핑 문화 확산으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업종이 한정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서울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공구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 만연한 뉴욕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현재 뉴욕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상점은 인적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한 요가스튜디오, 미용실, 세탁소 정도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최저가를 좇는 소비문화의 영향으로 단순히 판매만 하는 서점, 의류매장 등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라는 것이다.
하지만 주킨 교수는 “도시는 도시 거주자들의 각자 다른 삶이 유지될 수 있을 때 ‘정통성’(authenticity)을 띤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도시가 다양성을 바탕으로 정통성을 지키려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한 꾸준한 시민의 감시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법안 발의 등의 노력도 뒤따라야 하겠지만 우선 지역의 작은 삶과 작은 경제 생태계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선출직 관료들에게 끊임없이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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