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의 사전적 의미는 ‘구리로 만들거나 구릿빛을 입힌 사람의 형상’이지만 일반적으로는 ‘특정 인물의 기념상’을 통칭한다. 동상을 세울 땐 이미 삶을 마감한 인물의 업적에 대해 역사적 평가가 매듭지어진 후 사회 구성원의 합의를 거치는 것이 보통이다. 때문에 인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거나 건립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온전치 않을 경우 동상은 논란에 휩싸이고 만다.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논란과 갈등을 똑똑히 보아 왔다. 과거 군사정권이 통치를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세운 선열들의 동상이 인적 드문 공원으로 밀려난 현실 또한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그런데 역사의 평가는 고사하고 이후 삶을 예측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이 이 땅 곳곳에 세워지고 그로 인해 크고 작은 논란이 일고 있다.
본보가 파악한 산 자의 동상 전국에 83기.
연예인ㆍ 운동선수ㆍ정치인 순으로 많아
본보가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파악한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은 전국에 83기, 그 중 연예인을 표상화 한 것이 36기로 가장 많았고 체육인(23), 정치인(15), 기업가(9) 순이었다. 동상을 건립한 주체 역시 개인부터 지자체, 국가 등 다양하다. 이들이 내세우는 동상 건립의 목적은 인물의 업적을 기리고 문화적 경험을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이지만 기본 바탕에는 ‘유명인과 우리 지역, 우리 학교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홍보 전략이 깔려 있다. 실제로 지역의 중요한 자원인 유명 인사를 내세우는 동상 마케팅의 성과는 상당하다. 그러나 단기적 성과에만 매달려 졸속 추진될 경우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교육적 측면에서도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장병희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 대부분이 단기적인 업적을 바탕으로 세워진 만큼 삶 전체의 과정이 아닌 일시적 성과만으로도 역사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어린 세대가 가질 수 있다. 또한, 동상 속 ‘위인’의 후속적 삶이 뒤바뀔 경우 가치관이 흔들리게 되고 결국 사회를 향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동상 속 위인의 삶이 뒤바뀔 경우
가치관 흔들리고 사회 불신 생겨
#1. 정치인의 동상
3일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복원된 생가 앞, 한적한 시골 마을에 세워진 동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렸다. 반 총장의 동상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던 김모(43ㆍ남)씨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해 목표를 이뤄낸 분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관람객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동상 속 인물이 ‘살아 있는 사람’이란 점은 마음에 걸려 했다. 지모(60ㆍ여)씨는 “보통은 돌아가시고 난 후 세우는 게 맞긴 한데…”라고 말끝을 흐렸고, 이모(67ㆍ여)씨는 “아직 창창한데 동상 세우고 생가 복원해 놓은 게 좀 그렇긴 하네. 대통령 되면 이 동네 땅값 좀 오르려나”라고 농담을 섞어 말했다. 반 총장의 동상은 바로 옆 공원에도 한 기 더 세워져 있다.
음성군은 유엔 사무총장 취임을 기념하고 관광자원화를 위해 2010년 조성한 반 총장 기념 시설 덕분에 지역경제가 나아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에선 건립 추진 당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뚜렷한 업적이 없었고 그 후에도 평가가 엇갈린다는 점에서 동상 건립은 과하다고 지적한다. 국비와 도비, 군 예산 등 50억여원을 투자한 데 비해 관람객 수는 연 7,300명 수준으로 지역경제에도 별반 도움이 안 되는 실정이다.
반 총장 동상 공원 내 한 기 더 있어
관람객 수는 연 7,300명 수준
논란이 더욱 커진 것은 최근 반 총장의 대권 도전 가능성이 불거지면서부터다. 선거법 위반소지도 제기됐다. 중앙선관위는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동상을 건립한 것이 아니므로 위법 가능성은 희박하나 상황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음성군 역시 공식적으로는 “대선 출마 발표가 없으므로 추후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건립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정치적 논란에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반 총장이 정치적 행보를 시작할 경우 파장이 커질 것 같은데 선거법에 위반되는 사항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위인’의 현실 정치 참여 가능성이 동상의 논란을 키우는 가운데 원로 정치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흉상은 모교 구성원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제막을 못하고 있다. 9일 충남 공주고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막식은 지난해 11월에 이어 두 번째 연기됐다. 총동창회 측은 “충분한 토의와 허심탄회한 소통으로 합의점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5ㆍ16 쿠데타와 한일협정 등 지난 행적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합의를 통한 흉상 제막은 쉽지 않아 보인다.
#2. 스포츠스타의 동상
2012년 경기 군포시에선 김연아 동상을 둘러싸고 소란이 빚어졌다. 동상 제작 과정에서 제작비 비리 의혹이 불거진데다 동상의 생김새마저 실제와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포시는 이 조형물이 김연아를 모델로 만든 게 아니라고 밝혔으나 누가 봐도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스포츠 스타를 지역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사업이 분명했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좋은 성적을 낼 경우 선수를 지역 홍보에 활용하는 경우는 흔하다. 다만, 국민적 관심과 열기가 식기 전 급하게 동상 건립을 추진하다 보니 실제 인물과 전혀 닮지 않거나 본인도 모르는 사이 동상을 세우기도 한다. 월드컵 4강신화의 주인공 이을용은 강원 강릉시에 본인의 동상이 세워진 사실을 4개월이 지나서야 알았다. 경기 고양시의 장미란 동상은 실제 인물과 전혀 닮지 않았고 대구 모교에 세워진 이승엽 동상 역시 팬들로부터 타격 자세가 실제와 다르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3. 연예인의 동상
관광객 한 명이 아쉬운 지자체들은 주로 영화나 드라마 촬영 장소에 출연 배우의 동상을 설치한다. 한류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유명 배우의 동상이 외국 관광객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은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역 주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제작을 추진하면서 동상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한 드라마 촬영지인 충북 청주시 수암골에선 유명 배우들의 동상 설치과정에서 사유지 침해 등 주민과의 갈등이 빚어졌고 설치 후에도 골목에서 도로변으로 동상이 옮겨지는 등 마찰이 지속됐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신재훈 인턴기자(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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