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교회에는 ‘농민주일’이 있다. 1995년부터 매년 7월 세 번째 일요일에는 온 교회가 농촌과 농민을 위해 기도한다. 강강술래, 길쌈놀이를 하고 농산물 장터를 여는 등 각지에서 잔치도 벌인다. 하지만 17일로 다가온 올해 농민주일을 맞는 천주교계의 표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가톨릭농민회 소속으로 민중총궐기대회에 참가했던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후 처음 맞는 농민주일이기 때문이다. 백씨가 궐기대회 전날 파종한 밀을 가톨릭농민회, 보성군농민회, 우리밀살리기운동 등이 대신 수확해 '백남기 우리밀'을 판매하는 등 안간힘을 써 볼 뿐이다.
최근 광주 서구 광주대교구청에서 만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69) 대주교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인간 생명의 가치, 인간의 품위를 어떻게 지켜나갈지 제대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물대포 사건 직후 백씨를 병문안하고 “생존권 수호 차원에서 한 일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무자비하게 할 수 있느냐”며 정부에 날을 세웠다. 김 대주교는 가톨릭농민회 회원인 백씨와 안면이 있는 사이다. 그는 인터뷰를 위해 한국 농촌의 현실을 빼곡히 적은 A4용지 10장을 손에 쥐고 와 “모든 곳에서 생명 중심의 철학이 실종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백남기씨 병문안 당시 발언이 화제였는데요.
“당시에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백남기씨의 쾌유를 위해 기도하고 싶었고, 사경을 헤매는 남편과 아버지를 보며 속이 타 들어가는 가족들에게 하나의 가족으로 함께 해주고 싶었어요.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우는 아이에게 왜 우냐고 묻기 전에 우선 손을 잡아주고 함께 해주는 것이 사랑이다’라고 하셨잖아요. 그런 불상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성숙한 시위 문화의 정착을 위한 정부의 인식 변화를 촉구해야겠다는 의지도 있었고요. 우리가 잘 알듯이 물대포 사건은 이 사회에 만연한 생명 경시 사고방식의 표출이었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였죠. 사람의 생명에 위해를 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을 취하는 태도는 살인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상황이 바뀐 게 없습니다.
“아직도 (백씨가)혼수 상태에 있다는 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무엇보다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가 법적, 제도적 방지 장치를 마련해야겠지만, 특히 생명을 중시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상황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겠죠. 이상적인 법과 이상적인 제도만으로 유토피아가 자동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제도를 운영하는 주체가 법의 정신과 취지를 제대로 숙지하지도 않고, 몸에 체득할 의지가 없다면 결국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않겠어요.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모든 것에 앞서는 가장 큰 기준인데, 한편으로는 그가 평소 펼쳤던 농촌 살리기 운동이 정부의 정책으로 뒷받침돼야 그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겁니다.”
-평소 농촌 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나요.
“농업은 생태환경을 살리는 생명산업이잖아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발표하신 회칙 ‘찬미 받으소서’는 지구 생태 위기에 주목합니다. 현대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도움도 되지만, 이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들이 온 인류와 세계를 지배하는 결과를 낳는 만큼 인류가 올바른 한계를 정하고 자제력을 기르는 윤리와 문화와 영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 농업과 농촌의 현실을 보면 단순한 경제논리로 생산성 효율에만 집중한 나머지 계속 피폐해지고 있죠. 농촌인구는 줄고, 식량 자급률은 30% 미만으로 형편없이 낮아지고, 식량안보 측면에서도 대단히 위험한 수준 아닌가 싶어요. 적잖은 학자, 기업인이 ‘농업 희생론ㆍ포기론’을 쉽게 주장하는데 이게 정말 합당한지 자문해야 합니다.”
-가톨릭 교리와도 관계가 깊은 문제네요.
“농촌은 하느님 창조질서에 가장 친밀하게 동참해 생명을 일구는 터전이에요. 대기정화, 수질정화, 토양보전, 조류 서식지 제공 등을 모두 도맡잖아요. 그 공익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49조 3,400억원에 달한다고 해요. 이래서 미국, 유럽연합, 스위스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농가소득의 50% 수준을 국가 보상금이 차지하는데 우리는 불과 3% 수준이니. 이런 농촌을 살리자고 1994년 춘계 주교회의가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고, 이듬해에 ‘농민 주일’을 제정한 거죠. 그러나 민간의 운동만으로는 한계가 명백해요. 정부가 구체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가끔 농민을 그저 하등국민 상태에 머무르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농민을 포함해 모든 약자들의 처지가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권력이 권위라는 도덕적인 바탕을 가지지 못할 때, 권력은 권세가 되고, 이 권세가 이기적인 약육강식의 상태를 만들지 않나 싶어요. 점차 가진 권력을 조금이라도 공동선을 위해서 쓰겠다거나 봉사하는데 쓰겠다는 정신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죠. 인간의 생명과 가치, 품위가 존중되는 사회라야 물대포 사건도, 세월호 참사도 재발하지 않을 텐데”
-지난해 한국 주교들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질문이 “세월호는 어떻게 됐나요” 였다고 알려졌는데 어떻게 답변하셨나요.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됐느냐, 그 가라 앉은 배는 어떻게 됐느냐”하고 물으셨죠. 아직 해결이 안됐다고, 배는 바다에서 꺼내 올리려고 아직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정도로 말씀드릴 수 밖에 없었어요. 세월호 문제도 마찬가지로 제도나 법의 문제라기보다 해결 의지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요.”
-진상규명이나 신상필벌도 되지 않고 각자 살아내기는 버겁고, 그런 한국 사회를 ‘헬조선’이라고들 합니다.
“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죠. 모두가 인생의 성공을, 특히 돈을 목표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가난과 부마저 금수저, 흙수저에 따라 대물림이 되니까요. 최근에 제가 아는 한 젊은이도 국적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을 했어요. 한국에서는 인맥이나 돈이 없는 한 내 능력을 정당하게 평가 받을 수 없을 거라며 외국에서 유색인종으로 차별을 받더라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지 곳에 사는 게 낫지 않겠냐는 거예요. 결국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약자들에게 기회의 땅이 아니라는 얘기죠.”
-변화가 가능할까요.
“결국 철학이 없는 사회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요. 정치인은 정치인답게, 법조인은 법조인답게, 언론인은 언론인답게, 모두 자기의 자리에서 정말 인간이 중심이 되는 철학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지를 자주 생각해요. 모든 일에 있어서 인간이 중심이 되고, 인간의 가치와 품위가 존중돼야 한다는 정서가 더 널리 공유되는 수밖에요.”
-역사가 퇴보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에겐 의식화 운동이 필요한 거죠. 인생에 3대 교육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정교육, 학교교육, 공동선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교육. 이 사회교육을 언론이 맡아줘야 해요. 그런데 정권에 따라 편향된 보도가 늘어나니까, 저는 여론조사 결과도 의심을 많이 해요. 국민들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똑같이 공유한 상태가 아니니까요. 언론인들이 성직자 수준의 사명감을 가지고 함께 변화를 일궈나가면 좋겠어요.”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 있다면요.
“사드 배치 문제만 해도 과연 적절했는가, 계속 집요하게 짚어줬으면 좋겠어요. 누가 생각해도 너무나 상식적인 내용에 대해 정부가 잘못된 결정을 할 때, 즉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각종 정책의 발목을 붙잡을 때, 그럴 수 없도록 국민들이, 각계각층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요구할 수 있도록 언론이 보도해줘야죠.”
-약자들이 머무는 현장을 찾고, 사회현안에 목소리 내는 성직자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약자 곁에 있어주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랑의 의무이자 인간의 기본적 태도가 아닌가요. 공자님도 인(人)은 곧 동정(同情)이라고 하셨잖아요. 굳이 종교적 계명을 따지지 않더라도 측은지심을 가지는 것은 인간된 도리죠. 자기 일이 아니라고 못 본 채 한다면 결국 그런 부메랑이 똑같이 그 사람에게 돌아올 겁니다. 온 하늘이 오염돼 있는데 자기만 마스크 쓴다고 온전하겠어요. 또 그리스도인이라면, 절제되지 않은 배타적 사유재산권은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죠. 다른 사람은 굶어 죽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쌓아두고 썩히는 것은 온당하지 않으니까요.”
-말해야 할 때 침묵해선 안 된다는 거네요.
“원칙과 정황에 따라서 선택해야 되겠지만, 기회주의적인 침묵은 동조라고 생각해요. 신중함을 빌미로 해서 늘 재고 있으면 그건 신중이 아니라 몸을 사리는 게 돼요. 만약 신중만을 중시했다면 독립투사들이 어떻게 독립운동을 하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었겠어요.”
-최근 교구 내에 노숙인 샤워장을 신설하셨죠.
“몇 년 전 로마에서 성 에지디오 공동체가 운영하는 노숙인, 난민 지원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노숙인과 난민들이 언제든 와서 샤워하고, 이발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도록 기증품이 치수대로 정돈돼 있더라고요. 기증 받은 옷을 전부 깨끗하게 세탁하고 다려서요. 저희 교구에도 신자 한 분이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데 거기 동참해서 샤워장을 마련했어요. 자존감과 일자리를 찾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들이니까요. 기회만 되면 쉼터를 확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간 가치가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인가요.
“그런 사회 분위기가 조금씩 자리 잡으면 ‘헬조선’ 같은 불명예도 조금씩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질적으로 성공한다고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잖아요. 세속적인 기준, 높은 권좌의 성공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다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따른 정당한 평가가 주어지는 사회를 위해 ‘스텝 바이 스텝’으로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최선을 다해야죠.”
-우울한 일들만 넘치는데 희망을 가져도 좋을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이 선하고, 재능은 뛰어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가 다종교 사회이면서도 큰 무리나 갈등 없이 지내는 것만 봐도 수용성이 넓잖아요. 이 넓은 수용성이 모든 일에 침묵하는 방향이 아니라, 선한 것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쪽으로 발휘된다면 당연히 희망이 있다고 봐요. 무엇보다 나와 다름을 틀림으로 거부하지 말고 존중하고 이해하는 대화문화가 성숙하기를 바라죠. 희망은 있어요. 생명 중심, 인간 중심의 철학이 제1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요. 모두가 자기위치에서 자기답게,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요. 희망은 실패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포기하는 데서 끝나니까요.”
광주=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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