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올림픽에서 뛰려고 남겨뒀어요.”
육상 남자 높이뛰기 기대주 우상혁(20ㆍ서천군청)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는 지난 10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2016 오사카 국제육상선수권대회 결선에서 2m29를 넘어 우승했다. 2m29는 리우올림픽 기준 기록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마지막 대회에서 개인 최고 기록(종전 2m25)을 세우며 극적으로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바를 넘는 마지막 순간 우상혁은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오사카에서 2m29로 올림픽행을 확정한 뒤 그는 마지막 시기에서 2m32에 도전했다. 우상혁을 지도하는 윤종형 서천군청 감독은 “욕심내지 말고 올림픽을 위해 힘을 아껴두자”며 말렸다. 하지만 우상혁의 도전 의지가 강했다.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로 아깝게 실패했지만 윤 감독은 “바가 엉덩이 끝에 살짝 걸쳤다. 성공하는 타이밍 이었다”고 했다. 2m32는 리우에서 넘기 위해 남겨둔 셈 치겠다는 게 우상혁의 말이다.
그는 일찌감치 남자 높이뛰기 ‘신성’으로 꼽혔다. 2013년 세계청소년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2m20을 기록해 금메달을 차지했고 이듬 해 미국 오리건주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2m24를 뛰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1,2위도 우상혁과 기록이 같았지만 성공시기 차이에 의해 순위가 가려졌다. 한국 육상의 세계주니어선수권 입상은 2004년 남자경보 김현섭(31ㆍ삼성전자) 이후 처음이었다. 육상인들은 ‘제2의 이진택’이 될 재목이 나타났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진택은 2m34(1997년)의 한국신기록 보유자로 1998년 방콕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달성하고, 1997년 아테네(8위)와 1999년 세비야(6위) 세계육상선수권 2회 연속 결선 진출에도 성공한 한국 높이뛰기의 영웅이다.
하지만 세계주니어선수권 이후 우상혁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올해 초까지 부진은 이어졌다. 기록도 ‘바닥’을 쳤다. 우상혁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도한 윤종형 감독은 “3월 초까지 2m10도 못 넘었고 2m5를 겨우 뛰었다”고 했다. 우상혁도 “그 때만 해도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아예 못했다”고 털어놨다.
윤 감독과 우상혁은 도움닫기 스타일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윤 감독은 “그 전에는 바깥으로 빙 돌아 들어가며 회전을 많이 줬다면 지금은 안쪽으로 들어가는 대신 직선에서 속도가 더 나게끔 바꿨다. 현재의 방법이 우상혁에게 더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하루 아침에 자세를 바꾸는 건 모험이었지만 마지막이라 여기며 던진 승부수가 들어맞았다. 6월부터 가파른 상승세다. 지난 달 4일 전국육상선수권에서 2m23, 열흘 뒤 강원 고성통일전국실업육상경기대회에서 2m25, 7월 초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에서 또 다시 2m25를 넘었다. 오사카에서 달성한 2m29를 포함하면 한 달 사이 네 차례 연속 자신의 기록을 깬 것이다.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을 앞둔 우상혁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큰 대회를 나가면 신나고 더 재미있다. 일단 예선 통과가 가장 중요하다. 예선만 통과해서 내 기록만 유지하면 메달권도 가능할 것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윤 감독도 “우상혁은 일류 선수들을 상대할 때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질 정도로 대범하다”고 기대를 보였다.
리우올림픽 이후도 바라보고 있다.
윤 감독은 “상혁이에게 도쿄(2020년 올림픽)에서 사고 한 번 치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뜻밖에 기회(리우)가 빨리 찾아왔다”며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면 2년 내에 한국신기록을 깨고 도쿄에서 진짜 제대로 된 도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우상혁 역시 “나는 아직 젊다. 열심히 노력해서 한국 신기록을 넘어 한국 육상에 족적을 남기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눈을 반짝였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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