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늦은 밤(현지시간) 터키에서 발생한 쿠데타는 6시간 만에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반역” 선언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발 빠른 ‘왕의 귀환’에 허술하게 반역을 꿈꾸던 쿠데타 주도세력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양상이다. 서방 언론들은 허술한 쿠데타 진행과정에 의심스런 시선을 보내는 동시에 실패한 쿠데타는 대통령제 개헌을 노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힘만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쿠데타 세력은 16일 오전 국영방송을 점령해 “정부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선언하고 “세속주의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새 헌정질서를 수립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터키 수도 앙카라와 최대도시 이스탄불을 장악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을 잡거나 정부를 장악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쿠데타는 군 내 동조세력을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스탄불 방면 육군을 통제하는 우미트 둔다르 1군사령관과 하칸 피단 국가정보국장이 반군세력을 “군 내부 소수파”로 규정하며 에르도안 대통령 편에 섰다. 반면 반군은 전체 세력을 휘어잡을 지도자급 인사가 존재하는지조차 불분명했다. 터키 당국이 전직 공군 사령관 아킨 외즈튀르크를 주모자로, 육군 2, 3군 사령관 등도 가담자로 지목해 체포한 것을 미뤄 볼 때 이번 쿠데타에는 공군과 육군 일부 일부 고위층이 참여한 것으로만 추정되고 있다. 브라이언 클라스 런던정경대(LSE) 연구원은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과거 터키의 제도화된 쿠데타는 군내 협력이 대부분 끝난 상태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그러지 못하더라도 군 수뇌부는 모두 잡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쿠데타 세력은 언론과 통신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국영방송 TRT와 도안통신을 점령했지만 휴대전화와 인터넷망 등 새로운 매체가 여전히 작동했다. 터키 언론인 아슬르 아이든타시바시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이번 쿠데타는 1970년대 구식 쿠데타를 그대로 답습했다. 국영방송에 성명문만 발표하면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다른 민영채널이 15개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CNN투르크와 인터뷰는 반군을 고립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쿠데타가 너무도 허술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의 대응이 놀라울 정도로 신속했던 탓에 서방 언론과 전문가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독일 일간지 디벨트(Die Welt)는 17일 터키 쿠데타를 다루면서 “에르도안에게 이번 쿠데타는 ‘알라의 선물’”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어 일각에서 떠도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쿠데타 연출설을 암시하며 “아마추어 같은 쿠데타가 많은 의문을 유발하지만 분명한 것은 에르도안이 이를 이용할 것이라는 것”이라고 해설했다.
쿠데타를 둘러싼 각종 의문과 상관없이 향후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슬람주의에 기반한 집권 강화는 가속화할 전망이다. 에르도안 정권은 이미 2차례 군부의 쿠데타 음모를 적발했다면서 군부 내 반대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한 전력이 있다. 이번에는 미국에 망명한 반정부 인사 펫훌라흐 귈렌의 충성파를 쿠데타의 주동세력으로 지목하면서 ‘청소’를 다짐하고 있다.
군부를 포함한 반대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마친 에르도안 대통령은 숙원 사업인 대통령제 개헌을 가속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2001년 이슬람계 정당인 현 집권당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한 뒤 총리직을 3연임하고 2014년 터키 사상 첫 직선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이미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누리고 있다. 세속주의 군부의 쿠데타까지 진압한 에르도안이 이제 오스만제국의 절대 군주인 ‘술탄’을 꿈꾸지 못할 이유도 많지 않아 보인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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