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1인 지배 ‘술탄 왕국화’
美에 “배후 귈렌 넘겨라”
대학 학장 전원에 사직서 요구
공무원 2만5000명엔 해고 통보
학자·교수들의 외국여행 중지
TV·라디오 24곳 허가 취소도
CNN “마녀사냥에 버금” 비난에
대통령실 “피 흘린건 우리” 불쾌감
쿠데타에 대한 ‘피의 보복’을 선언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군부와 교육계, 언론계로 숙청 대상을 확대하면서 ‘현대판 술탄’ 등극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에는 쿠데타의 몸통으로 지목한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75) 을 넘겨 달라는 공식 요청서까지 보내 외교적 마찰까지 감수할 태세다. 다소 무리해 보이는 에르도안 정부의 반대파 솎아내기에는 ‘2차 쿠데타’에 대한 공포가 잠재돼 있다는 분석이다.
비날리 이을드름 터키 총리는 19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며 “귈렌에 동조하는 세력이 감히 우리를 배신하지 못하도록 뿌리째 뽑아내겠다”고 공언했다. 서슬퍼런 그의 말대로 이날 터키 고등교육위원회는 전국의 국공립ㆍ사립대 학장 전원인 1,577명에게 ‘귈렌에 연루돼 있다’며 사직서를 쓰라고 통보했다. 동시에 교육부 소속 1만5,200명, 내무부 8,777명, 총리실 257명 등 2만5,000명의 공무원도 해고됐다. 고등교육위원회는 이어 모든 학자 및 교수들의 외국여행을 중지시키고 해외 학술활동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쿠데타에 연루돼 체포되거나 직위 해제된 경찰과 군인, 교수, 공무원은 5만명에 육박한다.
언론에도 재갈이 물려졌다. 터키 라디오·방송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귈렌과 관계된 언론사의 허가를 취소하기로 만장일치 의결했다. 당장 TV와 라디오 24곳의 방송 허가가 취소됐다. 위원회는 “앞으로도 언제든 이 같은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언론으로서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군부는 물론 행정, 사법, 언론기관까지 정부가 장악하며 터키가 사실상 에르도안 1인 체제가 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을드름 총리는 또 “미국에 귈렌을 터키로 송환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혀 미국과의 갈등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귈렌은 에르도안의 장기집권을 비판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반정부 인사다. 미국은 인권문제와 증거 부족, 자국 내 망명자 보호 등을 이유로 귈렌 송환에 난색을 표해 왔다.
이에 국제사회는 터키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고 있다. 수만명의 공무원이 해고, 체포되며 국가 기능이 마비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CNN은 “마녀사냥에 버금가는 상황이 터키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브라힘 칼린 대통령실 대변인은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에서 피를 흘린 이들은 바로 우리”라며 국제사회의 비판에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또 “모든 조치는 터키 법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며 “앞으로 수천명이 더 체포돼도 이상할 것 없다”고 숙청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에르도안 정부의 무리한 솎아내기에는 귈렌 세력에 대한 공포가 내재된 것으로 보인다. 귈렌은 에르도안의 정치적 파트너였던 2000년대 초반부터 세속주의 군부 세력을 솎아내는 데 앞장섰다. 그러면서 귈렌이 군부 요직을 자신의 추종자로 채웠다는 게 에르도안이 느끼는 공포다. 70년대부터 ‘히즈메트’(봉사)라는 이슬람 사회운동을 이끈 귈렌은 교육, 사법, 행정부 등 터키 사회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에 따라 에르도안은 장성급 인사를 대상으로 숙군작업에 돌입했다. 심지어 에르도안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참모 콜 어칸 크리바크 중위와 알리 야지치 대령도 체포됐다. 이들이 모두 ‘에르도안의 사람들’(Inner Circle)로 분류되던 인물인 점으로 미뤄, 쿠데타 가담 세력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목전까지 뻗어 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인디펜던트는 “에르도안은 60만명에 달하는 군부 내에서 반정부 세력이 예상보다 훨씬 깊게 뿌리내려 있다고 두려워하고 있다”며 “2차 쿠데타에 대한 공포가 숙청을 가속화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