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소송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부가 부과하는 과징금은 이윤을 위해 불법을 저지른 기업을 제재하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과징금 액수가 미미하고, 이마저 감액이 남발돼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는 징벌적 기능을 못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가 폐손상 사망의 원인으로 밝혀진 후인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옥시레킷벤키저에 대해 “제품이 인체에 유해한데도 안전 문구를 표시했다”며 표시ㆍ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해 관련 매출액 1%에 해당하는 과징금 5,100만원을 부과했다. 정부 피해조사 접수자 중 옥시 제품 사용 사망자가 103명이나 됐지만 사람 목숨값으로는 참담한 수준이다. 옥시 제품을 베껴 판매한 홈플러스(사망 15명)와 세퓨의 제작사 버터플라이이펙트(사망 14명)에도 고작 100만원의 과징금이 각각 부과됐다. 해당 법이 매출액 2% 내에서만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배출가스 조작이 드러난 폭스바겐 15개 차종에 대해 과징금 141억원을 부과했다. 옥시 경우보다 엄청난 액수지만 올해 1월 미 법무부가 연방법원에 제기한 900억달러(약 108조원) 규모의 과징금 부과 소송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국내 과징금은 차종당 10억원의 상한액이 있기 때문이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매출액의 5%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어 기업으로서는 처벌에 따른 경제적 불이익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과징금 액수를 깎아주는 관행도 남용되고 있다. 지난달 감사원은 공정위에 대한 감사 결과 보고서에서 ‘공정위가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고, 추상적인 기준으로 과징금을 산정하거나 감액하고 있다’며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2012~2015년 공정위의 부과 사례 147건의 과징금은 당초 5조2,417억원이었으나 최종 부과금액은 2조3,222억원으로 절반 이하였다. 기업이 과징금을 부담할 능력이 없다거나 위법성에 대한 인식이 적었다는 등의 이유였는데, 애초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목적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오영중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은 “과징금 감액 사유를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하고, 매출액 대비 부과 비율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찬 경제개혁연구소장은 “실효성 있는 범죄 예방효과를 위해서는 과징금 상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업은 소비자 보호 노력이 궁극적으로는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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