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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법관들 “기업 불법행위 피해 위자료 11억원까지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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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법관들 “기업 불법행위 피해 위자료 11억원까지 높이자”

입력
2016.07.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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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사망 위자료 2억~3억원

고의나 중과실 있으면 가중키로

대법원, 하반기 새 기준액 확정

위자료 산정은 판사 재량이지만

정신적 고통 등 헤아릴 여유 없어

기계적 기준 맞춰와 ‘많아야 1억’

사지마비 피해 위자료 한국 8,000만원, 미국 70억

2007년 4월 교통사고로 목뼈를 다쳐 사지마비 진단을 받은 뒤 재활치료를 통해 가까스로 걷게 된 A(37)씨는 치료 목적으로 줄기세포 시술을 받은 직후 다시 사지가 마비됐다. A씨는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일실수입과 치료비 등 모두 12억400만원으로 계산된 피해액 중 20%에 불과한 2억4,000만원을 배상액으로 인정받았다. 사지마비에 대한 위자료로 법원에서 인정된 금액은 2,000만원이다.

국민 생명을 경시하는 기업의 불법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입법화하자는 여론이 높아지는 한편 같은 목적으로 법원이 위자료를 대폭 증액해야 한다는 제안이 힘을 얻고 있다. 통상 법원은 재산적 손해를 바탕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고, 정신적 고통 등 피해자가 입은 비(非)재산적 손해를 고려해 위자료를 더한다. 사망사고 배상의 기준이 되는 교통사망사고에 대한 법원의 위자료 산정기준액은 1991년 이전에는 2,000만원, 91년 3,000만원, 96년 4,000만원, 99년 5,000만원, 2007년 6,000만원, 2008년 8,000만원에 머물다 지난해 1억원으로 올랐다. 최근 옥시레킷벤키저가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에 대해 법원의 위자료 기준액을 고려해 1억~1억5,000만원을 배상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현실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거셌다.

외국과 비교하면 국내 위자료는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2013년 대법원이 낸 연구용역 보고서 ‘위자료 산정의 적정성에 관한 사법정책연구’에 따르면, 사지마비 피해에 대한 국내 위자료는 8,000만원인 데 반해 프랑스는 3억원, 영국은 5억원, 독일은 8억원, 이탈리아는 15억원, 미국은 70억원이다. 각국의 경제수준을 고려해 위자료를 1인당 국민총소득(GNI)으로 나눈 값을 비교한 결과, 프랑스는 우리나라의 1.7배, 영국은 3배, 독일은 4.7배, 미국은 37배나 높다.

이런 차이가 명백히 드러난 사례가 1997년 괌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추락사고다. 한국 법원은 유족이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7억여원의 지급을 명했다. 사고 원인이 조종사의 무모함으로 결론 나서 항공운송에 관한 국제조약상 무제한 손해배상 판결이 가능했다. 한편, 미국 연방법원에 소송을 낸 피해자 14명은 합의를 통해 1인당 평균 26억원을 받았다. 동일한 사고에 배상액수 차이가 엄청나자 일부 유가족들은 대한항공과 미국 항공기 제작사를 상대로 추가 소송을 냈다.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우리 법원이 노동력 상실 등 소극적 손해 배상이나 정신적 고통 등에 관한 위자료를 크게 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준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판사들이 처리할 사건이 워낙 많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헤아릴 틈이 없어 기계적으로 기준에 맞추게 된다. 또 위자료는 판사의 재량 사항인데, 튀는 판결을 내리기 꺼려하는 판사들의 경향 때문에 통상의 교통사망사고 위자료 상한선인 1억원을 넘는 판결을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보듯 갓난아기와 주부 등 약자들이 주로 희생됐는데도 수입이 없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조차 적은 것이 과연 옳으냐는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 이창현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그 동안 법원은 피해자의 개별 사정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위자료를 산정해왔는데, 당사자가 인격을 발현하고 인생을 영위할 가능성이 중대하게 침해됐는지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5세 아이가 사망한 경우 통계적으로 77.4년의 생존기간과 인생의 모든 가능성이 상실된 것”이라며 “이런 경우 비재산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고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법원은 이러한 자성을 바탕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같이 기업이 영리를 위해 고의나 중과실로 국민의 생명이나 신체에 피해를 입힌 경우 위자료를 10억원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법원의 재량으로 위자료 기준액을 높이면 피해자에게 비재산적 손해를 보전해줄 수 있는데다 기업의 악의적인 불법행위를 억제하고 예방하는 제재적 효과도 있다.

대법원은 최근 열린 ‘전국 민사법관 포럼’에서 “기업이 영리를 위해 저지른 불법행위로 소비자가 사망한 경우 위자료 산정 기준을 2억~3억원으로 설정하고, 고의나 중과실이 있는 경우 가중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1.5~2.5배까지 가중할 수 있는 특별가중사유에는 ▦가해자에게 고의ㆍ중과실이 있는 경우 ▦불법행위가 오랜 기간 계속된 경우 ▦기업이 기망적ㆍ배신적 홍보행위를 펼친 경우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고도의 후유장애를 오랜 기간 겪게 된 경우 ▦피해자가 아동인 경우가 포함될 전망이다. 여기에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이나 후유증을 계속 안고 살아가야 하는 등 법원이 증액할 만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면 50% 범위에서 추가 증액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이 경우 사망 사고에 대한 위자료는 기준액 3억원에 2.5배를 특별가중한 7억5,000만원까지 인정되고, 추가 증액 사유가 있다면 최대 11억 2,500만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대법원은 이르면 9월 ‘손해배상 전담 재판장 회의’에서 심화논의를 거쳐 올 하반기 중에 새로운 위자료 기준액을 확정할 방침이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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