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에 개최된 파리 올림픽은 44개국이 출전해 비약적인 양적 도약을 이뤘다. 선수단 규모도 앞선 대회 때보다 400여명이 많은 3,089명에 달했다. 직전 대회인 1920년 벨기에 앤트워프 올림픽에 참가한 나라가 29개국이었는데 이보다 15개국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올림픽을 취재하기 위해 1,000명이 넘는 기자들도 파리로 모여들었다. 미디어와 올림픽이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때, 각국 기자들의 취재 협력을 위한 국제스포츠기자협회(AIPS)가 출범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올림픽 중계방송이 등장한 것도 파리 올림픽부터다. 1924년 올림픽을 1년 앞두고 1923년에 설립된 ‘라디오 파리’가 실시간 올림픽 경기 해설을 선보인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텔레비전 중계가 등장했지만, 단 25개의 정해진 방에서만 시청해야 하는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각 개인의 집에서도 TV를 통해 올림픽 방송을 볼 수 있게 됐다. 파리 올림픽 최고의 스타는 핀란드 출신의 파보 누르미다. 누르미는 이 대회서만 금메달 5개를 목에 거는 등 올림픽 3개 대회를 뛰는 동안 모두 9번이나 시상대 맨 위를 점령했다. 이어 영화 ‘타잔’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할리우드 스타 조니 와이즈뮬러(미국)가 수영에서 금메달 3개를 따냈다. 와이즈뮬러는 다음 대회 암스테르담 올림픽 수영에서도 금메달 2개를 더 손에 넣었다.
정진욱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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