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사례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성 구매자들의 증언과 각종 논문에 소개된 인터뷰 내용 등을 종합해 1인칭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저는 성 구매자입니다.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을 구매한 것은 군 복무기간이었습니다. 전국의 성 구매자들이 몰려드는 이른바 ‘전국구’ 성 매매 집결지인 집창촌이 군대 근처에 있었습니다. 하루는 선임병들과 외박을 나갔어요.
“오늘 밤 거기 갈 거지?” “당연하지.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데.”
당시 이등병이었던 저는 선임병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랐어요. 나중에 알게 됐죠. 저녁 식사 후 택시를 타고 “○○○ 가주세요”라고 말하자 기사는 익숙한 듯 차를 몰았습니다. 어느 정도 갔을 때 기사가 물었어요. “칙칙이 필요해?”
‘칙칙이’는 성기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어 사정을 지연해 주는 물품이었습니다. 택시에 탄 선임병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내밀었죠.
드디어 집결지에 도착했어요. 택시에 탄 채 여성들이 진열된 상품처럼 모여 있는 ‘유리방’들을 눈으로 쭉 훑었어요. 그리고 한 가게에 도착해 가격을 물었죠. 그 중 한 명이 돈을 깎으려 하자 누군가 말했어요. “여자 사는 돈은 흥정하는 게 아냐.”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첫 성 구매를 경험했습니다.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해 군 면제 등의 이유로 일찍 취업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좋은 데 가자”는 제안에 못 이긴 듯 또 끌려갔습니다. 성 구매에 대한 도덕적 망설임이 아니라 비용을 빚 진다는 생각 때문에 갈등했습니다. 때로는 선배가 ‘한 턱 쏘는’자리도 있었죠. 그는 쉽게 후배들의 영웅이 됐습니다.
그렇게 성 구매가 익숙해지자 심한 경우 술만 마시면 꼭 ‘좋은 데’를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대학생끼리 계를 만들었죠. 누구에게 빚지지 않고 룸살롱을 갈 수 있는 목돈을 모으기 위해서였죠. 그렇게 성 구매를 매개로 한 그들과 관계는 한 배를 탄 것처럼 끈끈해졌습니다.
여자 친구가 있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결혼을 한 선배들도 거리낌 없이 업소에 출입하는 것을 보면서 여자친구에 대한 죄책감도 옅어졌습니다.
취업을 하고 나서 돈을 벌게 되자 친구에게 마음의 빚을 질 일도, 계모임을 할 필요도 없어졌죠. 혼자서도 안마시술소를 찾아갔어요. 한 달 동안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죠. 30대가 넘으니 주변 남성 중에 성 구매 경험이 없는 사람이 드물더군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안마 시술소에서 일하는 여성이 아주 우울해 하길래 측은한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룸살롱에 갔을 때 접대 여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예쁘지 않다’ ‘서비스가 별로다’라며 숱하게 ‘언니’들을 바꿔 앉혔는데 이날은 왠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해진 우리는 따로 만나서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집에 놀러 가는 사이가 됐어요. 친구들 중에 안마 시술소에서 일하는 여성과 사랑에 빠져 힘들어 한 녀석도 있었죠.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가 알고 있던 성 매매 여성들에 대한 선입견과 완전히 달랐어요. 그런 여성들은 돈을 쉽게 잘 버는 줄 알았는데 작은 연립 주택에 살고 있었고 씀씀이도 크지 않았어요. 어려서 가정폭력을 경험했고 부모님이 이혼하며 집 밖으로 겉돌다가 혼자 살게 됐어요. 그래도 행복하게 살겠다는 목표는 뚜렷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성 매매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고요.
아, 저는 어떻게 됐냐고요? 그 이후로 신앙을 가졌어요. 원래 교회에 다녔는데 믿음이 크지 않았거든요. 우연한 계기로 만난 전도사의 영향도 있었고, 제 삶을 돌아보던 중에 성경 구절이 큰 울림을 줬어요. 그 뒤로는 더 이상 그런 곳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 동안 성을 사면서 도덕적 갈등이나 고민없이 얼마나 무감각하게 접근했는 지 뒤늦게 깨닫고 많이 반성했어요. 앞으로 ‘좋은 데’에 가자는 주변 사람들을 모른 채 하지 않을 겁니다. 뜯어 말릴 거에요. 그곳은 결코 ‘좋은 데’가 아니라고, 그럴 돈 있으면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게 훨씬 정신 건강에 이로울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누가 왜 성을 사는가
한국 남성들의 성 매매 경험은 꽤 높다. 지난 2010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여성가족부 의뢰를 받아 작성한 ‘성 매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평생 동안 성 매매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한국 남성은 49%였다. 같은 질문에 대해 미국의 경우 15~18%였고, 심지어 성 매매가 합법인 호주와 네덜란드도 각각 16%로 한국보다 낮았다. 아프리카의 짐바브웨가 53%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여성가족부가 2013년 일반 남성 1,200명에게 온라인으로 실시한 성 매매 실태조사에서도 성 구매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56.7%(680명)였다. 응답자의 2명 중 1명이 성 매매를 경험했고 이들은 1인당 평균 6.99건의 성 매매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 구매자들은 주로 ‘남성들간의 유대와 연대의식 강화를 위해 성 매매를 한다'고 답했다. 성 구매 경험자들은 ‘호기심’, ‘군입대 등 특별한 일을 앞두고’, ‘술자리 직후’에 처음 성을 샀다고 답했다. 특히 일행 중 누군가 성 매매를 제안했을 때 이를 제지하거나 거부하는 사람 없이 함께 행동한 경험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성을 사고 파는 일이 일상적이라고 해서 성 매매를 남성문화로 단정짓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라는 지적도 있다. 성 매매를 한 적이 없다고 답한 남성들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 매매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경험자들은 처벌 사실을 알면서도 반복해서 성을 구매한다”며 “남성 개인의 의지와 개별 환경들의 문제일 뿐 모든 남성의 성욕을 통제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정당화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성 구매자에게 성 판매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실제로 성 구매 경험 유무에 따라 성매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인식 차가 발생한다는 연구도 있다. 지난해 발간된 '여성과 인권 14호'에 실린 '성 구매 남성과 비 구매 남성의 비교' 논문에서 반(反) 성매매 전문가 멜리사 팰리는 “성 구매자들이 성 매매 여성들의 해리 상태를 알면서도 성 구매 현장에서 폭력적 성향을 반복적으로 보인 것은 단순히 성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를 샀다고 인식한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팰리는 나이, 경험, 인종에 관계없이 미국 보스턴 지역의 성 구매 남성 101명과 비 구매남성 101명을 대상으로 각각 2시간씩 면접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남성들은 성 구매 여부와 관계 없이 성 매매 여성들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알고 있었다.
성 구매자의 41%가 포주 밑에서 일하는 성 매매 여성을 이용한 적이 있고, 성 구매자의 66%가 성 매매 여성 대다수가 꼬임에 넘어갔거나 인신매매돼 성 매매를 한다고 대답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 성 구매자의 96%는 보스턴 지역의 바, 마사지 업소, 에스코트, 기타 성 매매 장소에서 거의 언제나 미성년자들이 나온다고 답했다. 성 매매 종사 여성들이 열악한 조건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성 구매를 반복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 구매자들은 비 구매자들에 비해 성 매매 여성의 감정 상태를 예측하지 못하는 특성을 보였다. 성 매매 중 여성들이 느끼는 감정을 단어로 표현해 긍정적·부정적·중립적 단어로 구분했더니 성 구매자들은 비 구매자들보다 여성들의 실제 느낌과 벗어난 감정상태를 표현했다. 이 때문에 팰리는 논문에서 성 구매자들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의 성매매를 하게 되는 원인으로 해석했다.
성 구매 공간, 삶의 공간으로 인식해야
장소가 어디든 우리 사회에서 성 구매 현장은 외딴 섬이다. 일부러 거론하려 하지 않는 지워진 공간이다. 그렇다 보니 인권 유린 행위가 일어나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성 매매 현장을 삶의 공간으로 바꿔 놓으려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전북 전주시는 대표적인 성 매매 집결지인 선미촌 재정비 작업에 한창이다. 시는 이 곳을 볼거리와 먹거리를 갖춘 문화공간으로 재정비할 계획이다. ‘선미촌 다시 보기’ 행사의 일환인 걷기 행사에 참여했던 고건우(24 ·청년활동가)씨는 “온통 붉은 빛으로 가득해 선정적이었던 밤과 달리 낮의 골목은 빨래도 널려 있고 사람 목소리도 나는 삶의 공간이었다”며 “그러나 청소년 출입 제한 표지판이나 집 마다 창살로 가로막힌 문을 보면 ‘창살 없는 감옥’같았다”고 말했다.
성매매 문제 해결, 남성들의 참여 필요
남성들이 나서서 자정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성 매매에 반대하는 뜻을 가진 남성모임인 ‘시시콜콜’을 비롯해 부산지역에서도 같은 취지의 남성모임이 생겼다. 이들은 남성들이 나서서 성 구매를 반대하는 실천 방안을 찾고 있다. 남성모임을 제안한 전북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남성 중심적이고 왜곡된 성 의식에 대해 남성들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 확산될수록 성매매 수요차단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성 매매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왜곡된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난 최근 사건을 보면 이처럼 남성들이 나서서 의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2일 현직 부장판사가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성 매매를 하다가 현장에서 적발됐다. (▶기사보기)그런데 이에 대한 댓글들을 보면 높은 도덕성이 필요한 판사의 범법 행위에 대해 온통 옹호하는 시선들이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올라온 연합뉴스의 기사에 ‘정말 정직한 판사 같다, 얼마나 접대를 안 받았으면 자기 돈으로 가나’, ‘부장판사도 남자지’, ‘하필이면 40대 여성이랑 했네, 돈 아깝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전문가들도 남성들의 적극적 참여를 통한 문화, 의식, 구조의 변화가 성 산업 축소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안창혜 성 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활동가는 “성매매 종사 여성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성 수요자의 의식 전환이 선결돼야 한다”며 “그래야 성 구매자들의 왜곡된 성 의식을 충족하기 위해 작동하는 성 산업의 기형적 시스템이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시리즈 더보기▶<1>업소 생활 20년 손 털고 나온 ‘왕언니’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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