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궁이 올림픽 역사를 새로 썼다. 장혜진(29ㆍLH)-최미선(20ㆍ광주여대)-기보배(28ㆍ광주시청)로 이뤄진 여자 양궁 대표팀은 8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의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열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단체전 결승에서 러시아를 세트점수 5-1(58-49 55-51 51-51)로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여자양궁은 단체전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이번 대회까지 단 한 차례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으며 8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후 올림픽 전 종목을 통틀어 8연패 이상을 달성한 팀은 한국 여자양궁을 포함해 3팀뿐이다. 미국 남자 수영이 혼계영 400m에서 13연패를 이어가고 있고, 케냐 육상이 3,000m 장애물에서 8연패를 이뤘다. 하지만 타고난 체격ㆍ체력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기초 종목이 아닌 기록 종목에서의 8연패는 전대미문의 신화다. 남녀를 통틀어 한국 양궁이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은 전체 83개 가운데 21개다. 그러나 올림픽 양궁으로 범위를 좁히면 한국이 가져간 금메달은 38개 중 21개다.
올림픽 등 메이저대회가 열릴 때마다 한국양궁의 선전 비결을 다루는 외신들의 분석 기사를 접할 수 있다. 2012 런던올림픽 때 로이터통신은 “한국인은 사용이 불편한 쇠 젓가락을 사용한다”며 우리의 손끝 감각을 양궁 실력의 원천으로 보는 색다른 분석을 내 놓기도 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이날 로이터통신은 “한국 여자 양궁이 올림픽 통치기간을 늘렸다”고 보도했다. 현장의 외신 기자들은 경기 뒤 열린 공식 인터뷰에서 “한국이 양궁에서 강한 이유는 무엇이냐”고 또 물었다. 이에 장혜진은 “한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훌륭한 지도자 밑에서 차근차근 훈련을 받으며 기초를 잘 닦는다. 기본기가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역시 사교육이 없는 국내 유일의 올림픽 스포츠라는 점을 28년 장기집권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20여 년간 양궁 국가대표 감독과 대한양궁협회 전무이사를 지낸 서거원(60) 인천계양구청 감독은 이날 본보와 통화에서 “초등학교 양궁 선수들이 전국에 900명 가량 된다. 이들이 활을 잡는 순간 대한양궁협회에서 1년간 모든 장비와 대회 출전 비용을 지원해준다”면서 “사교육이 없다는 얘기는 파벌이 존재할 수 없고, 선수 선발에 잡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이기에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온 것이고, 이는 한국 양궁의 지속적인 발전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이 됐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시안게임에 못 나가고, 무명 선수라도 발탁되는 경우가 양궁에선 흔하다.
실제 양궁 선수들은 “대표 선발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선 약 8개월 동안 서바이벌 게임을 벌여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옥 훈련을 경험하게 된다. 최종 남녀 각 3인의 올림픽대표가 되려면 개인훈련을 제외하고도 공식 연습(3발)을 합쳐 총 4,055발을 쏘고, 표적지 확인 후 사선을 왕복하는 거리가 182km에 달한다. 런던 올림픽에서 최현주(32)의 부진이 장기화되자 대표 선수 교체론이 고개를 들었을 때 문형철(58) 대표팀 총감독은 “절대 안 된다. 원칙을 지켜줘야 후배들도 선발전 시스템을 믿고 갈 수 있다”고 힘을 실어줬다. 이번에도 무명의 장혜진이 신궁 강채영(20)을 1점 차로 꺾고 대표에 뽑혔을 때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서거원 감독은 “불안해도 원칙을 굳게 지켜왔기에 한국 양궁이 오늘 세계정상을 지킬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의 자부심은 상상 이상이다. 정상 등극보다 수성이 어렵지만 ‘지금까지 쌓아 온 걸 내가 깨뜨릴 수 없다’는 책임감이 부담감을 누른다. 기보배는 “선배들의 영광이 있었기에 우리가 많은 주목을 받는다. 값진 금메달을 딸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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