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29ㆍ세르비아)가 리우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1회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테니스 선수 최고의 영예인 커리어골든슬램(호주오픈ㆍ프랑스오픈ㆍ윔블던ㆍUS오픈 등 4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커리어그랜드슬램에 올림픽까지 우승하는 것)의 꿈도 물거품 됐다.
조코비치는 8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남자 단식 1회전에서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28ㆍ아르헨티나)에게 0대2(6-7 6-7)로 무릎 꿇었다. 두 세트 모두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이 벌어졌지만 강력한 포핸드 스트로크를 앞세운 포트로의 공세에 조코비치가 밀렸다. 비교 대상이 없었던 조코비치의 강인한 근성과 집중력도 이날만큼은 먹혀 들지 않았다.
결코 만만치 않은 적수였다. 포트로는 현재 세계 랭킹 141위로 처져 있지만 2009년 US오픈에서 우승했고, 2010년 세계랭킹 4위까지 올랐던 왕년의 실력파다. 2012년 런던 올림픽때도 남자 단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조코비치를 꺾는 등 올림픽마다 발목을 잡고 있다.
포트로는 하마터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 뻔한 해프닝도 겪었다. 경기 시작을 몇 시간 남겨놓고 선수촌 엘리베이터가 정전으로 멈춰서는 바람에 40여분간 좁은 승강기에 갇혀 있었다. 아르헨티나 핸드볼 선수들이 구출해준 덕에 간신히 경기시간에 맞춰 출전할 수 있었다.
최근 한동안 손목 부상 때문에 주요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던 포트로이지만 이날 만큼은 완벽히 상대를 몰아 부쳐 대회 최대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조코비치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커리어골든슬램 달성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조코비치는 그랜드슬램 대회에서만 총 12회 우승했지만 커리어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건 최근이다. 두달 전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비로소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리우올림픽까지 우승하면 앤드리 애거시(46ㆍ미국)와 라파엘 나달(30ㆍ스페인)에 이어 역대 세 번째 커리어골든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으나 압박감을 이겨내진 못했다.
조코비치는 코트를 떠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내 인생, 내 선수 생활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패배”라고 말했다.
이변의 희생자는 또 있었다. 올림픽 여자 복식에서 무려 세 번의 우승(시드니ㆍ베이징ㆍ런던)을 합작한 비너스(36)ㆍ서리나 윌리엄스(35ㆍ이상 미국) 자매다. 윌리엄스 자매는 같은 날 열린 여자 복식 1회전에서 루사 사파로바(29)와 바르보라 스트리코바(30ㆍ이상 체코)에게 0대2(3-6 4-6)로 완패했다. 독감 등 컨디션 난조에 발목이 잡힌 비너스는 앞서 7일 단식 1회전에서도 탈락해 짐을 싸게 됐다. 런던 올림픽 단ㆍ복식 2관왕에 올랐던 서리나는 단식 금메달을 노린다.
남자 복식 2번 시드의 앤디 머레이(29)와 제이미 머레이(30ㆍ이상 영국) 형제도 홈 관중의 편파적인 응원을 받은 토마스 벨루치와 안드레 사(이상 브라질)에게 0대2로 져 탈락했다.
테니스 선수들에게 올림픽은 상금이나 랭킹 포인트가 없지만 투어 대회보다 더 중압감이 큰 대회로 꼽힌다. 국위 선양이라는 목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한국 테니스의 ‘전설’ 이형택은 “조코비치, 서리나 같은 톱 선수들은 자국에선 국민적 영웅이라 4년마다 돌아오는 올림픽이 매년 열리는 투어 대회보다 부담감이 훨씬 클 것”이라며 “투어 대회보다 올림픽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가 오히려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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