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회 많이 참가할수록 포인트
잦은 출전으로 전술 노출 ‘역효과’
“금메달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다. 자기 자신만 생각해라.”
‘한국 유도의 전설’ 전기영(43) SBS 유도 해설위원이 리우올림픽 초반 부진에 빠진 후배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유도는 침통하다. 세계랭킹 1위로 기대를 모았던 남자 60kg 김원진(24ㆍ양주시청), 66kg 안바울(22ㆍ남양주시청), 73kg 안창림(22ㆍ수원시청) 모두 금빛 메치기에 실패했다. 세계랭킹 2위인 여자 57kg 김잔디(25ㆍ양주시청)도 조기 탈락했다. 9일(한국시간)까지 안바울과 여자 48kg 정보경(25ㆍ안산시청)이 딴 은메달만 두 개다.
한국은 김원진과 안바울, 안창림 외에 10일 경기를 치르는 90㎏ 곽동한(24ㆍ하이원스포츠단)까지 세계랭킹 1위가 4명이나 돼 더 큰 기대를 모았다. ‘어벤저스’라는 별명도 붙었다. 서정복(62) 유도대표팀 총감독은 올림픽 미디어데이에서 “남자는 전 체급 메달이 가능하다. 남녀 합쳐 2~3개의 금메달을 바라 본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올림픽같은 무대에서 랭킹은 큰 의미가 없다는 말도 있다. 유도의 세계랭킹은 축구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처럼 국제 대회에 참가한 횟수가 많을수록 포인트가 쌓여 올라간다. 상위 랭커가 많은 국가는 올림픽 쿼터를 더 받을 수 있고 1위에 오르면 좋은 시드를 받는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올림픽 출전 선수면 실력이 종이 한 장 차이다. 리우 현지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전 위원은 “랭킹 1,2위가 아니라 10위, 12위도 올림픽 금메달을 딸 수 있다. 우승을 노리는 선수는 16강이든 8강이든 어차피 한 두 번은 고비가 오기에 시드 배정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여러 번 대회에 출전하다 보니 전술이 노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 위원은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랭킹을 높인 건 좋지만 상대가 우리 기술을 간파하기 더 쉬웠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선수도 있다.
김원진이 대표적이다. 김원진은 평소 체중 감량에 스트레스를 안 받는 편이었는데 이번에 유독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경기 당일 제대로 힘을 쓰기 어려웠을 거란 분석이다. 유도대표팀은 리우데자네이루 시차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상파울루에서 열흘 이상 전지훈련을 소화했지만 효과를 못 보고 있다.
지나친 관심도 독이 됐다.
유도가 대회 초반 메달밭 역할을 할 거란 장밋빛 전망이 나오면서 부담이 커졌다. 전 위원은 “선수들이 금메달에 대한 강박감이 너무 강하다. 좀 즐기면서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은 이제 남자 4체급(81㎏ㆍ90㎏ㆍ100㎏ㆍ100㎏ 이상)과 여자 3체급(63㎏ㆍ70㎏ㆍ78㎏ 이상)을 남겨두고 있다. 이 중 남자 90㎏의 곽동한 역시 유력한 우승 후보다. 하지만 나머지 선수 중에서도 깜짝 금메달의 주인공이 나올 수 있다. 4년 전 런던올림픽 때도 한국은 초반 사흘 동안 애국가를 울리지 못하다가 남자 81㎏ 김재범(31)과 90㎏ 송대남(37)이 잇따라 정상에 올랐다. 전 위원은 “이제 절반이 지났을 뿐이다. 남은 선수들은 금메달을 기대하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만 생각하고 정상적인 경기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리우=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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