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올림픽이 한창이다. 남녀 국가대표 선수 모두가 나란히 목에 건 양궁 단체전 금메달과, 유도 국가대표 정보경 안바울 선수가 획득한 은메달은 열대야를 식힌 시원한 사이다였다. 브라질과의 12시간 시차를 견디며 밤을 꼬박 샌 보람을 느낄 만하다.
최근 한 지인으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다. “오래 전부터 올림픽 중계 방송을 볼 때 음소거 한다”는 말이었다. 영상만 보고 해설은 듣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해설은 안 하고 쓸데 없는 잡담이 가득한 소음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사의 올림픽 중계 방송이 “시청률 1위”라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지상파 방송 3사관계자가 들으면 머리가 멍해질 듯하다. 올림픽이 열리기 몇 달 전부터 자사 간판 캐스터와 스포츠 스타 출신 해설위원들로 진용을 꾸린 방송사들이 ‘음소거’하는 시청자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네티즌도 지인과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나 보다. 얼마 전 인터넷에는 리우올림픽 중계 도중 성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 몇몇 캐스터와 해설위원들의 ‘실언’을 모은 공간이 생겨났을 정도다. 여자 펜싱 선수가 구부러진 칼 끝을 장비로 펴는 모습에 “여자 선수가 철로 된 장비를 다루는 것을 보니 인상적”이라고 한다거나, 몽골의 여자 유도 선수에겐 “보기엔 야들야들한데 경기를 험하게 치르는 선수”라는 수위 높은 표현 등이 도마에 올랐다. 성차별적인 발언들이 걸러지지 않은 채 생방송 중에 전파를 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지난 수십 년 간 올림픽 중계 방송은 성차별 발언의 온상이었다. “미녀궁사(弓師)”나 “미녀역사(力士)” 등의 표현은 기본이고, “운동만 잘하는 게 아니라 얼굴도 예쁘다”, “여자 선수가 (힘이) 대단하다”, “엄마는 강하다” 등 여자 선수의 외모를 강조하거나 성적 편견을 조장하는 중계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성차별 발언이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을 타는 이유는 분명하다. 남자 캐스터가 중계를 장악하고 있어서다. 지상파 3사가 여자 캐스터를 기용한 올림픽 중계는 잘해봐야 각각 한 두 종목 정도다. KBS와 MBC가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이나 리듬체조에 여자 캐스터를 배정한 것 외에는 딱히 없다.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메달권 경기는 모두 남자 캐스터 몫이다. 캐스터 기용 방식부터가 부당하다.
방송사도 사정은 있다. 예능, 교양프로그램의 제작진이 MC나 내레이터를 직접 섭외하는 것처럼 스포츠중계 캐스터도 방송사 스포츠국에서 선정한다. 스포츠국이 종목별 성격에 맞게 아나운서실에서 캐스터를 물색하고 섭외한다. 스포츠국은 여자보다는 남자 아나운서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기시간이 긴 스포츠가 대부분이고 쉴 새 없이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성차별적 발언 등 올림픽 중계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자 캐스터의 활용은 방송사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스포츠는 남자들의 전유물’로만 여기는 방송사의 분위기가 여자 아나운서에게 기회조차 박탈한 건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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