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강화 위해 개인정보 수집
정보기관ㆍ경찰, 영장 없이 해킹
개인 스마트폰ㆍ컴퓨터 감시 가능
빅데이터 결합해 범죄 예측까지
“일어나지 않은 범죄로 처벌…
야당마저 사생활보호 무시” 반발
정부에 의한 개인의 감시와 통제를 경고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무대인 영국에서 ‘빅 브라더’논란이 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로 꼽히는 영국이 러시아에 버금가는 강력한 개인정보 수집법안을 통과하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영국이 선제적으로 개인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큰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테러 공포로 몸서리 치고 있는 유럽 각국도 앞다퉈 유사한 법을 제정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일명 ‘엿보기 법’(Snooper’s Charter)으로 불리는 ‘수사권 강화법’이 상ㆍ하 양원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영국 하원은 지난 6월 정부가 발의한 수사권 강화법을 찬성 444표 반대 69표의 압도적 차이로 통과시킨 바 있다. 현재 의회에서 검토중인 이 법안은 이르면 8월 상원의 의결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법안에 따르면 영국 국내정보국(M15)과 해외정보국(M16) 등의 정보기관과 경찰 등 수사기관은 개인의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해킹할 권한을 얻게 된다. 영장 없이도 애플이나 구글 등 IT업체로부터 개인의 인터넷, 애플리케이션(앱) 사용 기록을 넘겨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IT업체는 의무적으로 사용자의 인터넷 사용기록을 최소 1년간 보관해야 한다. 심지어 전화 도청까지 가능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기관이 광범위한 개인의 사생활 정보를 들여다 볼 수 있어 ‘엿보기 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유럽 전역에서 테러가 잇따르며 테러 방지 조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강하게 제기됐고, 당시 내무장관이던 테리사 메이 총리가 “국민을 불확실한 위협에서 보호하겠다”며 법안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영국 시민단체 ‘리버티’의 제임스 웰치 법률국장은 “시민의 사생활과 경제적 활동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FT도 “영국은 러시아와 함께 정부가 개인의 인터넷 기록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취재원이 드러나 언론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영국이 법을 통과시키면 유럽 각국도 유사한 제도를 만들며 개인의 사생활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개인 정보 활용 방식도 논란이 되고 있다. 수사당국은 개인 정보에 빅데이터 분석 기법 등을 적용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마 재배 방법을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한 기록과 스마트폰의 위치 정보, 통화 내역을 종합해 마약 거래를 예측하는 식이다. 수사당국은 “SNS 등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범죄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기술과 권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어나지 않은 범죄를 예단해 처벌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다만 영국 국민들은 사생활 침해 논란에 대해 미온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영국 정보감독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5%만이 정보기관의 사생활 정보 접근에 우려를 나타냈다. 시민단체들은 “법안이 아직 의회에서 논의 중이라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한 것 같다”면서 “야당인 노동당이 테러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사생활 보호를 도외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감시 전 장관 승인을 받고 법무부가 집행을 철저히 관리하는 식으로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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