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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송한 법ㆍ시행령 규정들 정밀도 높여야 청렴문화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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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송한 법ㆍ시행령 규정들 정밀도 높여야 청렴문화 정착”

입력
2016.08.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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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실행을 앞두고 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공무원들이 점심 식사 후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실행을 앞두고 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공무원들이 점심 식사 후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악법도 법이라고 하지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악법’이 되지 않아야 한다. 악법이 억지로 지켜지면서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과 비용을 양산하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따르고 지키는 ‘착한 법’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영란법은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위헌논란은 넘겼다. 하지만 각계 각층에서 법 개정과 시행령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법이 안착하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9일 법조계와 관련 학계의 분위기를 종합하면 김영란법에서 ‘고칠 건 고치자’는 데 이견을 찾아보기 어렵다. 시대를 선도하는 법이 처음부터 완벽한 경우가 없는 만큼 필요하면 얼마든 고치고 다듬어 우리 사회에 최적화 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악법의 색채를 빼는 ‘시기’에 대해선 ‘일단 시행 이후’로 수렴 된다. 식사ㆍ선물ㆍ경조사비의 상한기준으로 3만ㆍ5만ㆍ10만원으로 정한 시행령 제정에 참여했던 한 대학 교수는 “점을 지우려다 더 큰 흉터를 남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의 요구를 한번 수용하기 시작하면 누더기 법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최소한 내년 설까지는 그대로 시행하면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현실에 맞게 고쳐가면 된다”고 제안했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일률적 기준을 적용해 발생하는 ‘역차별’은 가장 먼저 개선할 부분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것이 대학 교수들의 강의료 문제. 강연을 명분으로 큰 금액이 오갈 것을 우려해 김영란법은 공무원들에 대해 시간당 최대 50만원(장관급), 공익유관단체 직원은 40만원(기관장)으로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속인주의에 따라 해외 국가 기관이나 대학에 초청을 받아 강의를 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국인 학자를 국내 초청하면 항공료, 숙박료를 포함해 거액의 강연료를 주면서 국내 이공계 교수들이 해외서 강연하면 100만원 이상을 못 받게 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며 시급한 개선을 촉구했다. 그는 “지금 대학가에선 강연료 제한 탓에 예정된 강의를 취소하고, 새로운 강의 요청에 응하지 않는 분위기마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재외공관 외교관들에게 식사ㆍ선물 상한액을 일률적으로 적용한 것도 역차별에 해당한다. 김영란법은 속인ㆍ속지주의를 모두 적용해 외국인 외교관이 주는 5만원 이상의 선물을 받을 수도, 우리 외교관이 해외 인사에게 3만원 이상의 식사 접대도 할 수 없어 외교 활동 위축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 중견 외교관은 “어떤 나라에선 라면 한 그릇이 3만원을 넘을 만큼 현지 물가는 천차만별”이라며 “차별적 요소를 제거하든지, 그럴 수 없다면 예외규정을 시급히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리송한 법 규정과 시행령의 정밀도를 높이는 것도 김영란법의 성공을 위해 요청되는 사안이다.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가 각 단체, 기관에서 몰려드는 각종 문의에 대해 “구체적인 것은 사건이 법원에 가봐야 알 수 있다”며 해석을 보류하는 것은 법 규정의 구체성이 그 만큼 떨어진다는 방증이다. 더구나 법원 소송이 마무리 되기까지 보통 1,2년이 걸리는데, 모든 판단을 사법부에 맡겨야 한다면 김영란법은 예상보다 장시간 시간 표류할 수밖에 없다. A법무법인 변호사는 “법원의 판례가 축적되어야 한다는 말 자체가 법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법과 시행령 규정의 정밀도가 떨어질 경우 검찰이나 경찰에 고소ㆍ고발이 잇따르고, 검ㆍ경의 권한 남용을 초래할 수 있다. 송준호 안양대 교수는 “도로교통법의 경우 구체적인 불법 행위 하나하나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며 “김영란법도 이처럼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면서 우리사회에 청렴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이 투명한 사회와 공익성을 추구한다면 적용대상이 공익성 짙은 사회 다른 영역으로 확대될 필요도 있다. 김영란법은 예외적으로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의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ㆍ기준의 제정ㆍ폐지 등에 제안ㆍ건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 비선출식 공직자를 통해 14가지의 부정청탁 대상직무 담당자에게 민원을 전달할 경우 일반인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민원 전달 공직자는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정부 관계자는 “적지 않은 시민ㆍ복지 단체의 경우 공익을 앞세우지만, 알고 보면 집행ㆍ지도부의 사사로운 일과 연관 될 때가 많다”며 “(이들도)반드시 법 적용 대상에 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로펌 등으로 적용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투명사회운동본부 관계자는 “현재 상태의 김영란법이 국민 지지를 받고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면 이 영역까지 포함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적당한 시기에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첫술에 배 부를 수 없듯 단기간에 김영란법이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때문에 김영란법의 성공을 바란다면 시행 이후 드러나는 각종 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새 법이 등장하면 시행 후 뜻하지 않은 상황들이 쏟아진다”며 “구체적인 현상을 보고 고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입법취지 훼손 규탄 기자회견'에서 김영란법 기준 완화 시도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입법취지 훼손 규탄 기자회견'에서 김영란법 기준 완화 시도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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