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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애플은 창업자도 쫓아내… 무조건적 경영 승계는 위험"

입력
2016.08.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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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와 국가미래연구원, 좋은정책포럼이 공동 기획한 릴레이대담 ‘한국경제를 말한다’의 열 번째 주제는 재벌입니다. 한국 경제를 논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이슈이자, 가장 뜨거운 주제입니다. 보수 성향의 국가미래연구원쪽에선 서울대 경제학부 이상승 교수가, 진보성향의 좋은정책포럼에선 인하대 경제학과 김진방 교수가 각각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토론= 이상승 서울대 교수, 김진방 인하대 교수

사회= 이성철 부국장

한국일보사에서 열린 릴레이대담 ‘한국경제를 말한다’에서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왼쪽)와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가 우리나라 재벌개혁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사에서 열린 릴레이대담 ‘한국경제를 말한다’에서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왼쪽)와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가 우리나라 재벌개혁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회= 한국경제에서 재벌만큼 공과 과, 선과 악, 장점과 단점의 두 얼굴을 가진 곳도 없을 겁니다. 지금도 재벌체제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고요. 일단 우리나라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재벌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미래에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어가는 데에도 과연 현 재벌체제가 적합할 것인가가 궁금합니다.

김진방 교수= 우리나라 재벌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국가가 경제성장전략의 일환으로 돈과 혜택을 몰아줌으로써 재벌체제를 탄생시킨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모든 재벌이 똑 같은 조직형태를 취하게 됐고 그렇게 고착화되었습니다. 만약 좀 더 자생적이고 경쟁적 환경이 만들어졌다면 아마도 우리나라 기업형태는 지금처럼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좀 더 다양해졌겠죠. 동질적 조직으로 구성된 경제는 아무래도 대외환경변화에 취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경제가 앞으로 좀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해지려면 현 재벌체제는 다소의 충격을 가해서라도 고쳐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상승 교수= 큰 틀에선 동의합니다. 1960~70년대엔 금융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 돈을 조달해 수익성 있는 사업에 투자한다는 개념이 없었지요. 그걸 대신한 게 재벌들이었습니다. 한 사업에서 돈을 벌어 유망한 사업, 기술력이 요구되는 사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재벌들이 만든 겁니다. 이건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큰 장점이었습니다. 이젠 시대와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지만 과연 재벌체제의 대안이 이거다라고 잘라 말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김진방= 재벌을 해체해서 다른 특정조직으로 바꾸자는 건 아닙니다. 다만 현 재벌구조의 문제를 하나씩 고치다 보면 다양한 형태로 변화할 수 있겠지요. 변화의 큰 원칙은 세가지 입니다. 책임성, 전문성, 그리고 투명성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총수일가의 기득권을 제한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천편일률적인 대기업 지배구조

사회= 총수 얘기를 하셨는데, 어떤 부분이 가장 문제라고 보십니까.

김진방= 투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기업집단에 유리하기보다는 궁극적으론 지배주주 즉 총수일가에 유리한 쪽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감몰아주기도 그렇고, 회사자산을 싸게 산다거나 반대로 자기자산을 회사에 비싸게 판다거나…. 기업에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사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죠. 이런 부분은 강력하게 규율 되어야 합니다.

이상승= 재벌들의 무리수나 불법행위는 대부분 경영권과 관련된 사안인데, 대체 왜 이렇게 경영권에 집착하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그냥 10%, 20% 지분을 가진 지배주주로 남아 있을 때에 비해, 직접 경영권을 장악했을 때 누리는 개인적 이익이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감몰아주기도 생기는 것이고, 저가전환사채도 발행되는 거죠. 총수들이 회사이익에 반해 사익을 추구한다면 소액주주 같은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이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또 사후적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장치를 꼭 만들어야 합니다. 다만 총수일가에게도 지나치게 규제만 가할 것이 아니라, 대주주로서 즉 캐피털리스트로서 남을 수 있게 어느 정도는 출구도 만들어줘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회= 총수의 탐욕문제는 여러 재벌그룹들의 불법적, 부도덕한 행태를 통해 많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그건 특정개인의 문제이고, 총수체제 자체는 신속한 의사결정이나 효율적 집행 면에서 장점도 많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요즘처럼 기술이나 제품주기가 빠른 시대엔 더 그렇다고도 하구요.

이상승 교수
이상승 교수

이상승= 구글 얘기를 해보죠. 구글은 대학원생 2명(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창업했고 이후 전문경영인 1명(에릭 슈미트)을 끌어들여 3명이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상장을 할 때 이들은 자신들의 지분에는 주당 10표의 의결권을 부여한 반면 일반 공모주주에겐 주당 1표만 허용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들 3명은 상대적으로 적은 지분으로도 주총에서 66%에 달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회사를 자신들 의지대로 끌고 갔습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적은 지분으로 회사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황제경영을 하고 있는 셈이죠. 이유는 장기경영 때문이었습니다. 확실한 지배권을 갖고 있어야 단기 손익에 얽매이지 않고 장기경영이 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이건 상장 당시 제출서류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부분입니다. 우리나라 재벌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총수들은 자식들에게 좋은 회사를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경영하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총수체제에 문제는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형태로 갔을 때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냐에 대해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김진방= 제 생각은 다릅니다. 총수가 사법 처리된 재벌에선 종종 ‘오너가 없으니까 주요 의사결정을 못 내린다. 경영차질이 심각하다’고 말하는 데, 그건 총수체제 하에서 총수가 없으니까 생긴 애로일 뿐입니다. 총수체제 아닌 새로운 지배구조로 간다면 당연히 새로운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질 겁니다. 총수체제 하에서만 신속한 의사결정, 장기적 투자, 모험적 투자가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 말씀하셨듯이 우리니라 재벌들은 2세, 3세에게 회사를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매우 강합니다. 내가 만든 회사가 내 자손 아닌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걸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 문제가 승계준비, 승계과정에서 비롯됩니다.

스티브 잡스. 로이터
스티브 잡스. 로이터

창업자도 쫓아낸 애플

김진방= 구글처럼 창업자가 공개적으로 ‘난 이렇게 경영할 테니 투자할 사람만 투자하라’고 하는 건 문제 삼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3세, 4세 승계는 다른 문제입니다. 자기가 사업을 일으킨 것도 아니면서 오로지 오너의 손자, 증손자라는 이유만으로 회사를 물려받는 건 굉장히 위험한 거죠. 만약 그 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큰 대형기업집단일 때는 더욱 더 위험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선 회사가 망하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쫓아낼 수도 없잖습니까.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창업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투자자들에 의해 쫓겨나기도 했고, 다시 영입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는 불가능한 얘기지요.

이상승= 미국의 기업문화는 창업세대가 끝나면 대부분 사회로 기부하거나, 아니면 포드처럼 물려받더라도 대주주로만 남아있다가 회사가 잘못 돌아간다 싶을 때만 경영에 관여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20세기 초 미국은 상속세를 최고 80%까지 올린 적이 있었는데, 당시 록펠러 같은 자본가들은 80%를 세금으로 내느니 차라리 기부하는 게 낫다고 해서 이런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어쨌든 부의 대물림엔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진방 교수
김진방 교수

김진방=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속의지가 특별히 더 강해서 재벌들이 경영권 승계에 집착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경영권승계가 안겨줄 사적 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죠. 따라서 세습을 줄이려면 사익 편취를 못하게 해야 합니다. 경영권을 물려받아봤자 큰 개인적 이익을 내기 힘들고, 게다가 경영을 잘못하면 빈털터리까지 될 수 있는 구조가 된다면 아마 재벌들도 아들 손자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고 차라리 회사를 팔아서 현금으로 남겨줄 겁니다.

사회= 두 분 모두 재벌오너 일가들의 사익추구에 대해 제한을 두자는 점엔 동의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걸 막으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할 까요.

김진방= 감독기관의 규제와 이해당사자에 의한 규율이 있겠죠. 현재도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상법개정, 예를 들면 집중투표나 감사선임제도 개선 같은 것들이 소액주주 같은 이해당사자로 하여금 대주주의 사익추구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선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그리고 검찰과 법원까지 포함해 감독기관들의 제재도 중요합니다.

배임은 막되 형사처벌 여부는 논란

사회= 검찰수사나 법원판단과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배임죄 부분입니다.많은 재벌총수들이 배임죄로 사법 처리됐잖아요. 하지만 사익추구가 아니라 경영적 판단이었다면 처벌해선 안 된다는 요구가 많습니다.

김진방= 회사이익을 위해서라지만 실제론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로 인해 다른 이해당사자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A계열사가 망하려고 하니까 B계열사에서 돈을 빼서 지원했다고 할 때, 과연 이것을 경영상 판단이라고 넘어가야 할까요. A계열사를 살리려는 행위 자체가 총수의 개인지배력 유지를 위한 행동은 아닐까요. 그런 식으로 용인하다 보면 모든 행위가 합당하게 포장될 수 있어요.

이상승= 배임 문제의 쟁점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어떤 결정이 배임에 해당하느냐 여부이고 두 번째는 배임일 경우 이걸 형사처벌해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첫 번째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건 사전규율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10조원을 주고 한전부지를 매입한 것을 놓고 보죠. 과다하다는 비판도 있었고 나중에 개발이 잘 되어서 오히려 잘한 결정이란 평가도 나올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사전규율 시스템이 작동했느냐 입니다. 즉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들어가서 10조원 금액을 충분히 검토하고 반대할 부분은 반대하고 이런 게 있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재벌그룹에선 이렇게 의사결정을 사전에 견제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질 않습니다. 두 번째로, 10조원이 과다한 금액이었다면 이건 회사의 손실이고 이 경우 소액주주들은 손해배상소송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소송을 내려면 의사결정이 제대로 됐는지 자료를 볼 수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장치가 너무도 미흡합니다. 다시 말해 배임에 대해 사전적으로 막을 방법도 없고, 사후적으로 손해를 보상받을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검찰이 나서게 되는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론 배임에 대해 형사처벌은 반대합니다. 대신 손해를 본 당사자들이 사전적으로 방지하고, 사후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장치는 꼭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사회= 한화나 효성 같은 몇몇 사례를 보면 과거 정부와 채권단에서 이유불문하고 부실계열사를 살리라고 해서 여유 있는 계열사를 통해 지원했다가 10여 년이 흘러 배임으로 처벌받기도 합니다. 이건 과한 것 아닐까 싶은데요.

김진방= 정부나 채권단 강요에 따른 의사결정은 법원에서 정상 참작이 됩니다. 저는 검찰이 오히려 재벌배임을 너무 소극적으로 보는 게 문제이지 절대로 법을 남용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상승= 어려운 계열사에 대한 지원문제를 무조건 배임으로 몰고 가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 계열사에 100원을 지원해서 그룹 전체로 200원의 이익이 났다면 잘못된 결정은 아니지요. 지원을 해주는 회사와 지원을 받는 회사의 주주구성이 달라 한쪽은 손해를 보고 한쪽은 이익이 날 때가 문제인데, 워렌 버핏 예를 좀 들어볼게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워런 버핏은 골드만삭스로부터 긴급 도움요청을 받고 거액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보통주 전환가능한 우선주를 받았고 9% 배당을 약속 받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골드만삭스에 대한 지원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고 따라서 배임개연성이 있었지만, 대신 잘 되면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걸 참고할 만합니다. A계열사가 B계열사를 그냥 지원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투자개념으로 우선주도 받고 고배당도 약속 받고 하면 소액주주들이 반대하지 않고 배임논란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지원받는 회사가 총수일가의 지분이 높고 지원하는 회사가 낮다면 빼돌리기가 될 수 있으니까 이런 부분은 규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 물려 받은 2세, 3세들과 달리 직접 창업을 해서 대기업으로 키운 몇몇 벤처기업인들을 보면서 이게 우리나라 기업의 바람직한 미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기업이 커지니까 똑같이 재벌흉내를 내더군요.

이상승= 이들이 왜 재벌처럼 행동할까 생각해보죠. 사익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경영권을 장악하면 너무나도 많은 이익을 누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겁니다. 경영권을 갖지 않고 대주주로 남아 있어도 충분한 이익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한편으론 경영권 장악으로 너무 많은 것을 누릴 수 없도록 소액주주권을 강화해야 합니다.

스웨덴 발렌베리는 한국식 재벌 아냐

사회= 외국 케이스를 보면 우리나라 총수경영처럼 가족들이 경영하는 회사도 많습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150년 넘게 가족경영을 해오고 있는데 별 잡음이 없습니다. 오너일가경영을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은데요.

김진방= 스웨덴 발렌베리가문은 공익재단을 통해 지주회사인 인베스트를 지배하고 있는데 표면적으로는 비슷하지만 우리나라 재벌과는 많이 다릅니다. 인베스트 이사회 구성을 보면 발렌베리가문 사람은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또 지주회사 산하 계열사들도 매우 독립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지요. 총수일가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우리나라와는 아주 다릅니다. 유럽엔 가족회사들이 꽤 많은데, 우리나라처럼 한 가족이 모두 지배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동업자나 투자자와 함께 경영을 합니다. 작은 치즈공장이라면 모를까 한 명의 주인이 모든 걸 지시하는 기업은 없습니다.

이상승= 가족기업과 전문경영인 기업 중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었습니다. 예컨대 아들 딸에게 좋은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 더 경영을 잘할 수도 있고, 반대로 능력이 없는데도 자녀가 물려받아 회사를 망칠 수도 있지요. 총수경영, 가족경영도 분명 강점은 있습니다. 삼성을 아무리 비판하지만 재벌체제가 그렇게 나쁘고 비효율적이었다면 어떻게 지금 같은 세계적 대기업이 됐겠습니까. 분명 그 시대적 상황과 경제체제에선 분명히 긍정적 역할이 있었고 그걸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김진방= 가족회사도 창업세대와 3,4세대는 또 다른 것 같아요. 창업자가 일군 회사는 그래도 낫지만, 손자 증손자로 내려오는 게 문제죠.

사회= 과거 재벌에 비해 지금 재벌은, 특히 2세 3세로 가면서 기업가 정신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김진방= 사실 요즘 대기업들은 면세점에나 관심이 있지 과감한 투자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투자가 총수지배 체제하에서 과연 가능할 지 모르겠네요. 오히려 새로운 지배구조에서 투자가 더 활성화될 것으로 봅니다.

이상승= 정당하고 투명한 기업활동을 통해 축적한 부에 대해선 정당성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투자도 하고 모험도 하는 기업가정신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재벌의 모든 걸 비판하면서 기업가 정신까지 없어졌다고 하면 공정한 비판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그 전제는 정당하고 투명한 기업활동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총수가 힘을 남용하거나 사익추구를 하지 못하도록 사전적으로 규율하고, 이해당사자가 피해를 볼 경우 사후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든 다음, 그런 제도하에서 축적한 부는 당연히 존중해야 할 겁니다. 황제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제경영 자체가 문제는 아니고 다만 이로 인해 다른 이해당사자들이 피해를 봐선 안되고, 피해가 생긴다면 보상을 받도록 해야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집단소송제 등은 하루빨리 확대 허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리=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사진=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이상승 교수는

1963년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으며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박사를 받았다. 산업조직을 전공한 경쟁정책 전문가. 한국산업조직학회 부회장이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자문도 맡고 있다. 현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바람직한 개선방안’, ‘공정거래와 법치’, ‘해방 이후 한국기업의 진화’ 등을 저술했다.

◆김진방 교수는

1958년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으며 미국 듀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제학사를 전공한 강성 재벌반대론자로 참여연대에서도 활동했다. ‘위기 이후 한국자본주의’, ‘한국 경제의 개혁과 갈등’등과 ‘재벌의 소유구조’ 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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