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의 강렬함이 통했다.
11일(한국시간) 올림픽 단일 종목 3연패라는 세계 사격역사를 새로 쓴 진종오(37ㆍKT)의 모자와 시계, 신발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한국 사격 대표팀이 공통으로 착용하는 경기복인 흰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제외하고는 빨간색으로 무장했다. 진종오의 넘치는 자신감을 대변하는 듯 했다.
빨간색 ‘드레스코드’의 비밀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그의 총에 있다.
스위스 총기회사 모리니는 진종오만을 위한 권총을 만들어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선물했다. 명품 총기회사인 모리니한테도 세계적인 총잡이 진종오는 더 없이 좋은 홍보 수단이다.
모리니는 2년에 걸쳐 권총을 특별 제작했다. 색상과 디자인은 모터스포츠 포뮬러원(F1)의 전설적인 드라이버 미하엘 슈마허(독일)의 레이싱카를 참고했다.
무엇보다 강렬한 빨간색이 인상적이다. 보통 총열은 은색이나 검은색으로 제작되지만, 진종오의 총열(약실부터 총구까지의 부분)은 붉은색이다. 진종오가 색상, 방아쇠, 손잡이 등 권총의 모든 부분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 내린 결정이다. 권총에는 진종오가 보유한 50m 본선 세계신기록 점수를 나타내는 ‘WR583’도 적혀 있다. 총을 보며 자부심과 자신감을 일깨우기 위해 새겨 넣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50m 권총 가격은 350만원 정도다. 하지만 진종오의 총은 한정판이라 값을 매길 수 없다. 진종오는 대회에 앞서 “나만의 맞춤형 총인 만큼 신뢰가 간다”며 “올림픽에서 많은 기록을 세운 뒤 이 총이 우리나라 박물관에 전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빨간색에 대한 그의 애정은 신발에도 숨어있다. 진종오의 신발은 역도화다. 2011년 5월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사격대회 이후 신었다. 그 대회에서 역도화를 신은 미국선수와 대화를 하다가 “균형감각에 역도화가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귀가 솔깃했다. 그는 귀국한 뒤 평소 절친한 후배 역도 선수 사재혁에게 부탁해 역도화를 몇 켤레 얻었다. 역도화는 무거운 바벨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역도 선수들을 위한 신발이다. 생리학, 역학 측면에서 사격화보다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게 사실이다.
역도화는 세심한 진종오와 궁합이 잘 맞았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색깔도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꿨다. 기록이 잘 나왔던 시절에 신었던 붉은색 역도화를 챙겨 리우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진종오의 선택은 적중했다. 그는 이날 50m 권총 결선에서 9번째 사격 6.6점이라는 최악의 실수를 하고도 기적과 같은 대역전 드라마를 썼다. 특별한 빨간색 사랑에 대해 진종오는 “의미를 두자면 강인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라며 웃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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