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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알파고, 포켓몬고? 한국 양궁에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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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알파고, 포켓몬고? 한국 양궁에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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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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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8연패 위업을 이룬 장혜진, 기보배, 최미선(왼쪽부터) 선수가 양창훈 감독과 함께 환호하고 있는 모습.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8연패 위업을 이룬 장혜진, 기보배, 최미선(왼쪽부터) 선수가 양창훈 감독과 함께 환호하고 있는 모습.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집중력을 강화하기 위해 몸에 뱀을 두르고 연습한다는 게 사실인가.”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양궁이 단체전 8회 연속 금메달을 따자 한 외신 기자가 우리 선수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 늘 완벽할 순 없고 때론 실수도 하는 법인데, 28년간 수많은 도전과 견제에도 흔들림 없이 정상을 지켰으니 선수들이 냉혹한 ‘훈련 기계’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한국 양궁이 워낙 강하다 보니 외국에선 우리 선수들을 괴물이나 기계로, 그들의 기술은 신비로운 것으로 여기곤 한다. 김치 버무리기를 통해 얻은 빼어난 ‘손맛’과 얇고 미끄러운 쇠젓가락을 사용하면서 터득한 손가락 감각이 한국 여성 궁사들의 성공 비결이라는 황당한 분석(로이터 통신)이 나올 정도다.

전설, 신화, 미스터리…. 듣기 좋은 수식어가 난무하지만 우리 양궁 지도자들은 별로 동의하지 않는 눈치다. 성공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식이 통하는 공정한 시스템이다.

양궁엔 전관예우가 없다. 국가대표 선발전은 매년 새로 치러지며, 모든 선수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한다. 올림픽 금메달,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등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고 우대받지 않는다. 과거 경력과 나이에 상관없이 가장 활을 잘 쏜 선수가 태극마크를 단다. 새파란 10대 고교생과 서른 살 베테랑이 함께 대표에 뽑힐 수 있는 이유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인 오진혁은 이번 리우 올림픽 대표에서 탈락했고, 여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기보배는 2년 뒤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했다. 냉혹하지만 공정하고 투명한 선발 과정 때문에 불만을 제기하는 선수는 없다.

국가대표 감독ㆍ코치도 위에서 꽂는 ‘낙하산’이 없다. 자신이 가르쳐 배출한 국가대표 숫자가 판단 기준이다. 국가대표를 여럿 배출해 지도력을 인정받으면 가장 경쟁이 덜한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맡기고, 이후 성과에 따라 세계선수권, 올림픽 등 단계를 밟아 대표팀 지휘봉을 맡긴다. 능력만 있으면 시골 학교 코치도 대표팀 지도자가 될 수 있지만, 왕년의 스타플레이어라도 자신의 소속팀에서 대표 선수를 길러내지 못하면 대표팀을 절대 맡을 수 없는 구조다.

양궁에선 ‘금수저’와 ‘흙수저’의 구분도 없다. 양궁을 처음 시작하는 학생에겐 양궁협회가 1년간 모든 장비와 대회 출전 비용을 지원해 준다. 양궁에 대한 열정과 소질이 있는데 돈이 없어 운동을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정한 시스템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초반 양궁계에도 선발전에서 탈락한 선수를 대표팀에 넣으라는 협회 고위층의 압박과 갈등이 있었다. 이에 젊은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정풍 운동’이 벌어졌고, 이후 30년간 공정성과 투명성은 양궁계에서 훼손할 수 없는 가치로 자리잡았다. 한 양궁 지도자는 “야구 축구 등 인기종목과 달리 양궁은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공정한 대표 선발 시스템은 최고의 성적을 거둬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30년 전 세계 최강이었던 미국과 러시아를 따라잡은 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주 체제를 구축한 한국 양궁을 보며, 선진 기업을 따라잡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로선 눈부신 성과를 내다 정작 1등이 된 뒤엔 ‘선발주자(first mover)’로서의 창조적 혁신에 실패해 성장이 정체된 우리 기업들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때마침 발표된 정부의 ‘국가전략 프로젝트’를 보면, 스포츠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국 양궁의 생존 전략보다 나은 게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이세돌을 이긴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뜨니 인공지능(AI)에 투자하고,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가 뜨니 증강현실(AR)을 키워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덮어놓고 따라하기’는 스포츠에서도 먹히지 않는 전략이다. 정 따라하기가 필요하다면 우리 양궁에게서 배우자. 첨단 기술 못지 않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식이 통하는 시스템이다.

한준규 산업부 차장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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