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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 만들던 제분의 메카, 산업화 흔적 고스란히 간직

입력
2016.08.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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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공업지대의 흔적을 간직한 CJ제일제당 영등포공장의 전경. 안창모 제공
영등포공업지대의 흔적을 간직한 CJ제일제당 영등포공장의 전경. 안창모 제공

경인공업벨트가 우리나라의 희망이던 시절이 있었다. 1937년 일본의 중국침략이 본격화된 중일전쟁으로 한반도에서는 병참기지화 속 공업화가 진행됐고, 38선 이남에서는 영등포와 인천 사이가 빠르게 공장지대로 바뀌었다. 경인공업벨트는 광복 후 남한의 유일한 공업지대로 1970년대까지 한국경제를 책임졌다. 영등포공업지대의 위상은 70년대 초까지 서울의 많은 간선도로가 서쪽으로 향했다는 사실로도 입증된다. 1968년 9월 최초의 고가도로인 아현고가도로 개통에 이어 경인고속도로가 서쪽으로 향했고, 서울역 고가도로가 만리재를 넘어 영등포로 연결되었으며, 독립문을 옮기고 금화터널을 뚫으면서 개설한 성산대로의 목적지도 영등포였다.

그러나 이제 경인공업벨트의 핵이었던 영등포는 더 이상 예전의 영등포가 아니다. 대부분의 공장이 수도권으로 옮겨졌고, 그 땅에는 예외 없이 아파트가 들어섰다. 공장을 대신한 아파트단지를 살펴보면 공장이 언제 이전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영등포는 각 시대를 드러내는 모습의 아파트단지로 채워졌다. 이렇게 빠르게 변한 영등포에서 아직까지 굳건히 자신의 존재감을 갖춘 공장이 있다. CJ제일제당의 영등포공장이다. 영등포공업지대의 핵인 영등포역을 지나 안양천변에 이르면 경인로변에 위치한 거대한 공장을 만나게 된다. 본래 1954년에는 건빵을 만들었던 동립산업의 공장이었다.

동립산업은 기성세대에게는 군대의 추억, 아이들에게는 귀한 군것질거리로 기억되는 건빵을 만들던 회사였지만, 본업은 건빵이 아닌 제분 제조였다. 건빵으로 시작해서 사업을 확장하던 동립산업의 운명이 바뀐 것은 5.16이었다. 자유당에 선거자금을 제공하고 부정 축재한 사실이 밝혀져 동립산업이 국가에 환수될 상황이었지만, 수입대체ㆍ수출중심의 산업시설로 전환한다는 명분하에 비리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졌다.

동립산업은 1985년 현재의 CJ제일제당에 인수되었고, CJ는 이 공장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의도를 가로질러 인천으로 향하는 경인로변에 우뚝 솟은 옛 동립산업 공장이 소멸된다는 사실은, 산업화를 피부로 체감했던 이들에게 제조업중심의 산업화세대 역할이 금융중심의 신자본주의 시대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해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2014년에는 CJ제일제당의 사업계획이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통과했다. 산업전사라는 단어가 일상이던 시대의 산업유산인 ‘구 동립산업 공장’이 소유주가 바뀐 지 20여 년 만에 소멸될 운명이 된 것이다. 이미 영등포공업지대의 풍경이 공장 굴뚝에서 주상복합빌딩으로 바뀐 지 오래다. 이제 산업시대의 마지막 모습이라 할 수 있는 CJ제일제당 영등포공장마저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서울시에서는 ‘사일로’의 보존을 통해 산업유산의 흔적을 남길 것을 권유했다. 기업에서 최소의 조치는 하겠지만, CJ가 기업가의 사회적 책무 실천이라는 적극적 공공기여를 통해 서울시와 시민의 기대를 넘어서는 적극적인 산업유산 보존과 공존에 대한 해법을 내주기를 기대한다.

안창모 경기대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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