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 가구 특화 전략으로 젊은 소비자 유입, 활력 찾아
“혼자 파 한 단 사면 처치 곤란인데 여러 식재료를 조금씩 한꺼번에 살 수 있어 편리하다는 반응이에요.”
“조리법은 더 상세하게 표기해야 할 것 같죠? 구매자마다 요리 실력이 달라 조리 후 맛이 균일하지 않다는 평도 있어요.”
전통시장에서 식품회사 마케팅실에서 들을 법한 대화가 오갔다. 최근 찾은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내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2012’에서 만난 서정래(55) 망원시장상인회장의 손에는 ‘망원혼밥(혼자 먹는 밥)’이라는 상품이 들려 있었다. 지난달말 상인회가 내놓은 시제품으로, 특정 요리에 필요한 1인분 식재료를 모두 간편하게 손질해 한 상자에 담은 꾸러미 상품이다. 제육덮밥과 두부버섯전골 꾸러미가 처음 나왔다. 2014년부터 자신의 집에서 ‘우야식당’이라는 집밥 사업을 해 온 차해영(30)씨와 망원시장상인회가 함께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지난 5월 이미 두 차례 시식 행사를 열고 좋은 반응을 얻어 시장성을 검증 받았지만 서 회장과 차씨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지 1시간 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40년 전 골목 좌판에서 유래한 서울 마포구 망원1동 일대 망원시장은 최근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부상했다. 주말이면 지역민뿐 아니라 데이트 삼아 일부러 방문하는 외지 젊은이들도 많아 시장은 늘 활력이 넘친다.
비결은 1~2인 가구 등 젊은층을 집중 공략한 상인들의 노력이다. 망원시장은 지난해 중소기업청의 전통시장 특화사업인 골목형 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됐다. 특화의 주제는 ‘1인 가구’. 서정래 회장은 “서교동의 1~2인 가구 비중이 68%나 될 정도로 망원시장 주변에 싱글족과 신혼부부가 많다. 전통시장의 대가족 위주 판매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초부터 ‘독립생활인(소가구)을 위한 망원시장 요리경진대회’를 열고, 이를 토대로 지난 5월 1인 가구가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조리법을 모은 책자 ‘망원시장 오늘의 레시피북’을 제작해 무료 배포한 것도 그래서다.
시장의 변화와 활력은 위기에서 비롯됐다. 상인들은 2012년 대형마트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 저지 투쟁을 위해 뭉쳤다. 이미 인근에 홈플러스의 기업형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들어서 상권이 위축된 터였다. 투쟁으로 2013년 상생협약을 얻어 냈다. 홈플러스는 식품 15개 품목을 팔지 않기로 했고 망원시장 고객센터 부지를 매입해 주기로 했다. 그 결과로 지난해말 문을 연 게 상인회 건물인 ‘스페이스2012’다.
망원시장 상인들 스스로도 변했다. 장보기 도우미가 장을 봐주고 산 물건을 집까지 배달해주는 ‘장보기 서비스’, 공공기관과 기업에 행사 물품과 식품 등을 배달하는 ‘걱정마요 김대리’, 1~2인 가구가 다양한 과일을 맛볼 수 있게 교환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망과휴’ 등이 망원시장 상인들이 머리를 맞대 내놓은 독특한 서비스다. 2014년말부터 티머니(대중교통 카드) 결제도 가능하다.
이렇게 해서 늘어난 젊은 소비자들의 영향은 단순한 매출 신장 이상의 의미다. 생닭을 판매하는 박미자(55)씨는 “21년째 망원시장에서 장사하고 있는데 요즘 부쩍 단골이 아닌 낯선 젊은 손님들이 많다”며 “그 덕분에 ‘우연히 한 번 들렀다 맛있어서 다시 찾아 왔다’는 손님도 늘었다”고 말했다. 4년째 닭강정을 판매하고 있는 황진희(51)씨는 “젊은 손님이 오면 나도 모르게 함께 생기가 도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결국 상인들은 시장과 소비자의 돈독한 관계 형성이 전통시장의 존재 이유이자 경쟁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정래 회장은 “혼밥 꾸러미 상품 출시 등 망원시장의 특화 사업은 소비자와 관계를 맺기 위한 시도로 나온 것들이 많다”며 “전통시장은 기업형 유통과 달리 지역 공동체의 활력을 좌우하는 지역사회 허브 역할까지도 해내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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