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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가비 태어나다

입력
2016.08.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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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8월 17일

선구적 흑인 인권운동가 마커스 가비가 1887년 오늘 태어났다.
선구적 흑인 인권운동가 마커스 가비가 1887년 오늘 태어났다.

독립운동이 됐든 인권사회운동이 됐든 그 속에는 크게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외교파와 자주파, 온건과 급진. 두 진영은 격렬하게 맞서고 서로의 등을 찌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공동의 전선에서 동지이다. 또 주도 진영의 이념이나 지향과 달리 그 운동의 대중적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하고 유동적이며 사안에 따라 활발하게 넘나들기도 한다. 섞이며 넘나드는 유역이 넓을수록 덜 배타적일수록 운동은 대체로 건강하다.

흑인 인권의 두 흐름이 그러했다. 두 보이스(Du Bois)와 마틴 루터 킹으로 이어진 비폭력 평화주의적 흐름과 마커스 가비(Marcus Garvey)와 맬컴 엑스로 이어진 좀 과격하고 급진적인 흐름.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를 설립한 두 보이스는 백인들이 차별적으로 누리는 보편적 가치의 울타리 안에 흑인들이 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면, 가비의 세계흑인향상협회(UNIA)는 흑인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독자적인 평등사회를 구축하되 막아서는 세력이 있다면 결연히 맞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 차이는 두 보이스가 아이티의 혼혈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을 나온 엘리트였고 자메이카 출신의 가비가 독학으로 공부하고 노동하며 차별 현실을 경험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NAACP는 미국의 다양한 민권ㆍ자유주의운동들과 연대하며 큰 힘을 발휘한 반면 UNIA는, 상대적으로 활동의 성과는 적지만, 흑인들만의 해운회사 설립 등을 통해 블랙 파워와 당당한 자존감을 과시함으로써 인권운동의 저변을 확대하고 굳건히 했다. 그 흐름은 30년대 흑인들의 아프리카 복귀 및 독립운동과 라스타파리아 운동(Rastafari Mo vement), 아프리카통일기구(OAU)를 낳은 범아프리카주의의 밑거름이 됐고, 일라이저 무하마드와 맬컴 엑스의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뿌리가 됐다.

가비와 두 보이스는 앙숙이었다. 하지만 “백인 공산주의자와 공화당원, 민주당원에게 인종 문제에 관한 근본적 입장 차이가 있는가?”라는 가비의 비아냥은 두 보이스를 공박하기 위한 거였지만, 두 보이스의 NAACP를 도와주는 것이기도 했다.

1887년 8월 17일 태어난 마커스 가비는 훗날 조작된 사실이 밝혀졌지만, 사업 관련 사기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27년 추방돼 1940년 영국 런던에서 별세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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