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보 간판 김현섭의 도전
日선수 성공에 자극 20km서 전향
3월 슬로바키아 대회 첫 레이스
올림픽 기준기록 가볍게 통과
경보강국 러 선수들 출전 못하고
우승 후보 슈와처도 금지약물
20년 만에 한국 육상 메달의 꿈
한국 경보의 간판 김현섭(31ㆍ삼성전자 육상단)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도로를 누비는 것이고 두 번째가 올림픽 메달이다. 마라톤은 황영조, 이봉주(이상 46)를 배출하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처음 경보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종목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김현섭은 “내가 잘 해서 메달을 따면 더 알아봐주지 않겠느냐는 마음으로 묵묵히 걸어왔다”고 털어놨다.
어느덧 그는 한국 경보의 역사가 됐다. 경보 20km에서 2011년 대구 세계선수권 4위, 2013년 모스크바와 2015년 베이징 세계선수권 10위를 차지하며 한국 육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3연속 톱10이라는 새 길을 놓았다. 하지만 만 서른 하나의 적지 않은 나이에 과감히 변신을 택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는 20km가 아닌 50km에 주력한다. 이유는 하나. 메달을 따기 위해서다.
경보 50km는 육상에서 마라톤(42.195km)보다 긴 유일한 종목이다. 4시간 가까운 ‘지옥의 레이스’를 마치면 몸을 가누지 못해 휠체어에 오르는 선수도 나온다.
김현섭은 경보 20㎞에서 세계 톱10은 가능하지만 3위 안에 들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50㎞의 경우 자신의 스피드에 지구력만 보강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2015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 50㎞에서 다니 다카유키(33ㆍ일본)가 3위에 오른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다카유키는 20km에서는 김현섭에게 명함도 내밀지 못하던 선수다.
김현섭은 50km로 전향한 뒤 지난 3월 슬로바키아 세계경보챌린지에서 4시간1분6초를 기록해 거뜬히 올림픽 기준기록을 통과했다. 리우에 입성한 뒤 지난 13일에는 경보 20㎞에 출전해 자신의 시즌 최고기록(1시간21분44초)을 작성하며 17위로 골인했다. 50km를 앞두고 컨디션 조절 차 출전한 거라 순위는 큰 의미가 없었는데 좋은 컨디션을 과시해 기대감을 높였다.
50km는 19일 오후 8시(한국시간) 열린다. 2km 구간을 25바퀴 돌아야 하는데 김현섭은 40km 지점까지 매번 2Km를 9분에 끊는다는 계획이다. 경보 20km에서 2km를 8분에 주파했던 주력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목표다. 결승선을 10km 앞둔 40km 지점에서는 승부수를 건다. 이민호 삼성전자 육상단 수석코치는 “초반에 의욕을 부리지 않고 40km부터 본격적으로 스퍼트 할 것이다”고 밝혔다. 슬로바키아 챌린지 대회가 교훈이 됐다. 당시 김현섭은 38km까지 마치 나는 듯이 걷고 있었다. 그대로 골인하면 한국 신기록 경신은 물론 전체 3위를 차지할 수 있는 페이스라 한국 육상 관계자들을 흥분시켰다. 하지만 40km 지점에서 체력이 뚝 떨어졌다. 현장에서 경기를 본 조덕호 삼성전자 육상단 사무국장은 “그 때는 정말 대박이 나는 줄 알았는데 40km부터 거의 걷지를 못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40km 이후에 버틸 수 있느냐가 메달의 관건이다”고 설명했다. 리우의 무더위도 계산에 넣었다. 경보 50km는 현지시간 오전 8시 시작한다. 선선한 오전에 체력을 비축하고 기온이 급격히 오를 때 스피드를 높여 경쟁자들을 따돌린다는 심산이다.
김현섭은 50km 완주 경험이 슬로바키아 챌린지 대회 딱 한 번뿐이다. 하지만 경쟁자들은 그를 잔뜩 경계하고 있다. 50km 선수 중에 남다른 스피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김현섭은 약점인 지구력 보강을 위해 지난 6월부터 3개월 동안 강원도 고성에서 지옥 훈련을 소화했다. 1주일에 150km씩 3개월 동안 2,000km를 걷고 또 걸었다.
이번 대회에 경보 50km 강국 러시아 선수들을 비롯해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한 명인 알렉스 슈와처(32ㆍ이탈리아)가 금지 약물 복용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것도 김현섭에게는 호재다.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요한 디니즈(38ㆍ프랑스), 작년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 우승자 마테 토스(33ㆍ슬로바키아),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자렛 탈렌트(호주ㆍ29) 등과 메달을 다툴 것으로 보인다.
한국 육상은 올림픽 마라톤에서 1992년 황영조가 금메달, 1996년 이봉주가 은메달을 딴 뒤 지금까지 메달이 없다. 이봉주 이후 꼭 20년째인 올해 김현섭이 리우 땅에서 세 번째 메달을 안기겠다는 각오다.
리우=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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