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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계 “건국절은 광복 의미 반토막 내는 것… 정치적 편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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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계 “건국절은 광복 의미 반토막 내는 것… 정치적 편가르기”

입력
2016.08.1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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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가족과의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말을 김영관 독립유공 대표 인사말을 듣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bo.com
지난 1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가족과의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말을 김영관 독립유공 대표 인사말을 듣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bo.com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정치적 행위이지, 사실관계와 논거를 따지고 드는 학문적 논쟁은 아니라고 봅니다. 정치권에서 그렇게 시끄러웠음에도 정작 역사학계에서 ‘광복절이나 건국절이냐’ 문제를 다룬 진지한 논문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잘 드러냅니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 광복절 축사에서 비롯된 건국절 논란에 대해 17일 이렇게 말했다. 광복군 출신 원로 독립운동가 김영관(92)옹이 박 대통령 면전에서 ‘건국절’을 강하게 비판했음에도 박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건국을 강조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비판과 여권의 반격이 이어지면서 건국절 논란이 커졌다. 이 과정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할 것이냐, 1948년 8월 15일 건국절을 기념할 것이냐는 논란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하게 내세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성립이 대한민국 번영의 발판이 됐다고 본다. 반대하는 이들은 건국을 강조하면 건국에 참여하지 않은 독립운동의 역사, 건국에 포함되지 못한 분단을 다루기 어렵다는 점, 건국에는 적극 참여한 친일파 단죄 문제 등을 낳게 된다는 점을 들어 비판하고 있다. 이 논쟁은 2008년 이명박 정권이 8ㆍ15를 ‘건국 60주년’으로 명명하면서 한차례 거세게 타올랐으나 독립유공자 단체 등의 반발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바 있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은 2006년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널리 알려진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글에서 시작됐다. 그는 동아일보에 쓴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칼럼에서 “1945년 광복과 1948년 제헌, 둘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광복은 일제의 패배에 따른 것으로 우리는 “광복을 맞았다고 하나 어떠한 모양새의 근대국가를 세울지,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과 “일제에 의해 병탄되기 이전에 이 땅에 마치 광명한 빛과도 같은 문명이 있었던 것처럼 그 말이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이에 대한 역사학계의 반박은 숱하게 나왔다.

가령 1948년 제헌이 더 중요하다는 이 교수의 주장에는 광복 이후 공백상태였던 한국 사회에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헌법이 일방적으로 주입됐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하지만 이는 실상과 다르다. 서희경(경희대)의 ‘한국 헌법의 탄생’(창비), 김육훈(역사교육연구소장)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휴머니트스) 같은 책들은 제헌헌법이 3ㆍ1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에 깊이 뿌리박고 있음을 밝혔다.

대표적인 게 임시정부가 독립해서 되찾을 나라의 체제가 ‘민주공화제’임을 임시헌장에다 못 박아뒀다는 점이다. 주목해볼 건 대동단 사건이다. 3ㆍ1운동 이후 일부 독립운동 세력이 고종의 아들 이강을 국외로 빼돌려 임시정부를 세우려 한 사건인데, 이 시도가 실패한 뒤 모든 독립운동에서 대한제국이 사라졌고, 모든 독립운동단체가 ‘공화국’을 내세웠다.

일제 36년을 지내면서 앞으로 되찾을 나라가 어떤 나라여야 할지 생각조차 안하고 있다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덥썩 받아들인 게 아니라, 오히려 3ㆍ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독립의 목표는 민주공화국 수립이어야 한다는 공통된 의견이 도달했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1948년 제헌의회 초대 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이 “19년 민국을 재건했다”고 발언하고 각종 연설과 일기에 임정 계승의 뜻을 숱하게 남겨둔 이유도 여기에 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식했다는 미국이 정작 제헌헌법에 포함된 사회주의적 요소를 굉장히 불편히 여겼다는 연구가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또 임시정부가 1920년 이후엔 분열돼 대표성을 가지지 못하고 국제적 승인도 못 얻었다는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은 많다.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는 “국제적 승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임시정부가 실제 한국인의 의사를 대변했느냐는 점”이라면서 “1919년 설립 초기 임정이 모든 독립운동단체를 아우르는 대표집단이었다는 점에는 일단 이견이 없고, 이후 분열이 있긴 했지만 광복 뒤 들어선 대한민국 정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정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밝힌 이상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와 별개로 다른 문제점을 지적했다. ‘건국’을 유달리 강조하는 건 국가를 이루지 못한 부족상태로 식민지화가 됐다가 해방 뒤 국경선이 확정된 아프리카 국가 같은 느낌을 준다는 얘기다. 이는 “일제에 의해 병탄되기 이전에 이 땅에 마치 광명한 빛과도 같은 문명이 있었던 것처럼 그 말이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이영훈 교수의 논리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홍 교수는 “일제 시대 이전 전통 사회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어쨌든 계승성 있는, 중앙집권적 통치를 해온 왕조국가가 쭉 있어왔다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1949년 국회가 국경일 제정을 검토할 때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을 동시에 경축한다는 의미로 ‘광복절’이라는 명칭을 택한 기록이 있다”면서 “ ‘이승만 정부도 정부수립이란 말을 썼다’ ‘김대중 정부도 건국이란 표현을 썼다’ 같은 말꼬리 잡기 싸움을 할게 아니라 원래 광복절에 다 포함된 해방과 정부수립 가운데 정부수립만 쏙 빼와 ‘건국절’이란 이름으로 반토막내려는 의도, 그리고 이 문제가 마치 엄청난 사건인양 이데올로기적으로 쟁점화하는 의도를 잘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균 교수도 “예전 건국절 논란 때는 나 스스로도 흥분해서 개입했지만 지금은 되도록 이 사안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면서 “사회 전체를 분열시키는 현실정치의 편가르기 전략에 말려든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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