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가뭄 동반 불볕더위
사과 일소 피해율, 예년의 2배
전복ㆍ돼지 등 집단 폐사도 급증
농수산물 가격 40%나 치솟아
“차례용품 대란 현실화” 우려도
“올해 농사는 완전히 망쳤다고 보면 됩니다.”
17일 오전 경북 영천시 금호읍 신월리의 한 포도과수원. 날이 밝자 마자 잰 걸음으로 자신의 포도밭(1만3,000여㎡)에 나온 조해도(60)씨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폭염으로 포도알이 죄다 쭈글쭈글 작아졌어요. 이래가지고는 상품성이 떨어져서 어디다 내놓고 팔 수도 없죠.”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볕을 원망이라도 하듯 두 손으로 하늘을 휘젓던 그는 “비라도 내리면 좋을 텐데, 이대로 가면 올해 포도값은 지난해 가격(㎏ 당 3,000원)의 절반으로 뚝 떨어질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한 달 넘게 계속되는 폭염이 몰고 온 후폭풍이 만만찮다. 가뭄을 동반한 기록적인 불볕더위가 농작물과 양식어장, 축사를 덮치면서 추석 대목을 앞두고 ‘농수축산물 대란’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전국의 들녘과 바다는 폭염에 데이고, 가뭄에 타 들어 가는 농심(農心)과 어심(漁心)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으로 가득했다.
국내 최대 포도 생산지인 경북 영천지역 과수원의 피해 현장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상당수 농가들은 포도나무가 강한 햇빛에 노출되면서 과실이나 잎이 타 들어가는 일소(日燒) 피해를 호소했다. 한창 열매가 익고 자라야 할 시기여서 현재 정확한 피해 규모는 파악할 수 없지만 폭염이 지속될 경우 생육 부진과 탈수 현상 등으로 인한 고사목 발생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실제 거봉포도의 경우 잎이 누렇게 변색돼 말라 죽은 나무들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영천시 관계자는 “올해는 강한 햇볕과 폭염에 비도 제대로 내리지 않아 포도 작황이 예년보다 형편없다”고 말했다.
사과 주산지인 충남 예산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충남지역 농정당국은 과수원마다 열풍을 맞아 나무에 달려 있던 사과의 5~6%가 햇볕에 데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예년의 일소 피해율(2~3%)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이다.
전남 무안과 충북 옥천 등 나머지 지역에서도 쪽파와 고추는 물론 들깨, 배추 등 채소류까지 말라 죽거나 성장이 멈추는 등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서ㆍ남해안의 양식장들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국내 최대 전복 주산지인 전남 완도 일대 전복 가두리 양식장은 쑥대밭이 될 지경이다. 폭염으로 바닷물 수온이 평년보다 3도 이상 높은 26~27도를 유지하면서 전복 폐사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생일도 해역양식장에선 이날 현재 524만2,000여 마리가 폐사해 피해금액이 40억원대에 달했다. 인근 금일도 해역양식장들의 피해는 더 커 피해 금액이 150억~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수산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어민 박병호(52)씨는“한낮에는 폭염으로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고, 저녁에는 온도가 떨어지면서 어린 전복이 급격한 수온차를 이겨내지 못해 폐사한 것 같다”며“올해처럼 전복 양식이 힘든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충남 서산과 태안 일대 우럭 가두리 양식장에선 13일부터 우럭 집단 폐사가 시작돼 지금까지 폐사량이 8톤을 넘었다. 경북 포항지역에서도 이날 현재까지 육상양식장 45곳 중 17곳에서 추석 제수용품으로 으뜸인 강도다리 11만6,700마리와 넙치 4만7,500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남 장흥과 여수 연안 해역에서는 지난 16일부터 적조생물이 출현해 어민들이 초긴장하고 있다.
닭과 오리, 돼지 등 가축 폐사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부터 8월 16일까지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은 349만4,000마리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38% 늘어난 수준이다.
이처럼 폭염 현상이 지속되면서 농수산물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이날 광주지역에서 거래된 풋고추 가격은 1㎏(상품)에 1만3,270원으로 1주일 전보다 32.7%나 올랐다. 또 2주 전 서울에서 1,400원 하던 사과(300g) 1개 값이 지금은 2,000원으로 40%나 치솟았다. 농작물 피해로 벌써부터 가격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유통업체들은 추석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광주지역 백화점 등은 폭염 피해가 극심해 당초 선물용 과일 물량 확보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과일 대신 건강식품과 생활용품 등 공산품 품목 물량을 늘리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kim@hankookilbo.com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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