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ㆍ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건국 68주년’을 언급한 것을 두고 해묵은 건국절 논란이 다시 번지고 있다. 역사적 정통성과 관련한 혼란은 바로잡는 게 맞지만, 보수ㆍ진보의 역사관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청와대와 여당이 소모적 논쟁을 부추겨 이념 대립을 격화하고, 나라를 소란스럽게 하는 게 바람직한 일인지 의심스럽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기가 무섭게 국회에서 대국민 공개토론회를 제안하고, 심재철 국회부의장은 중진연석회의에서 8ㆍ15 건국절 법제화를 주장하기도 했다.이런 태도는 당장 ‘우리 대한국민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 헌법 전문과 어긋난다. 임시정부 또한 헌법 1조에 민주공화정임을 선언하는 등 나름대로 민주적 법ㆍ제도를 갖춘 바 있다. 비록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상태여서 국가의 핵심 구성 요소를 갖지 못했고, 애초에 국가와 정부는 엄연히 다르다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지만,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법적 뿌리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이치에 비추어 미 군정 종식으로 이뤄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지정한다면, 역사적 법통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사실상 부인하게 되는 맹점이 있다. 일제와 강대국에 의해 좌우되고 왜곡된 우리 현대사의 복잡성을 간과한 채 억지로 8ㆍ15를 건국절로 만들려고 시도한다면 이념 갈등과 논쟁만 부추기게 마련이다.
물론 여권의 건국절 논란 부추기기가 야권의 일방적 비난에서 촉발된 측면이 있다. 박 대통령의 ‘건국 68주년’ 언급을 두고 제1야당 당권주자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하고, 문재인 전 대표가 “얼빠진 주장”이라고 비난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문 전 대표의 말을 그대로 받아 “얼빠졌다”고 밝힌 게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슷한 언급 때문이듯, 특별한 의미 부여가 없었을 수도 있는 말을 억지로 특정해 정치 공세에 활용하려는 뜻이 엿보인다.
정치색과는 무관하게 치열한 논쟁을 통해 역사를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현재의 논의 수준에서는 생산적 논쟁이 거의 불가능한 대신 이념ㆍ노선 갈등과 듣기 거북한 막말 주고받기로 끝날 게 불을 보는 듯하다. 그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합리적 결론이나 합의 도출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헛되이 논쟁을 부추길 게 아니라 학문적 성취를 지켜보는 것이 실용적이고도 바람직한 태도다.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야 할 여권에 그 우선적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어, 여권부터 건국절 논란에서 빠져 나와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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