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ㆍ영상 모회사에서 분리ㆍ진화
오포는 디자인, 비보는 사운드
기술력 바탕으로 마케팅 차별화
2분기 시장점유율 2, 3위 등극
샤오미 밀려나고 삼성전자도 고전
불과 1년 전만 해도 세계 시장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중국의 스마트폰 업체 ‘오포’와 ‘비보’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형제 사이’인 이들은 삼성전자와 애플 제품을 베끼는 데 급급했던 다른 중국 업체들과 달리 기술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17일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2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오포와 비보는 각각 16.2%와 13.2%의 점유율로 2, 3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2분기만 해도 비보는 7.9%, 오포는 7.6%로 샤오미와 화웨이, 애플에 이어 4, 5위에 그쳤지만 1년 만에 경쟁업체들을 따돌리고 순위표를 완전히 바꿨다. 성장세는 출하량을 보면 더 놀랍다. 2분기 오포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24%나 증가한 1,800여만대, 비보는 75% 늘어난 1,470여만대의 스마트폰을 중국 시장에 출하했다. 샤오미(1,050만대)와 애플(860만대)의 출하량이 같은 기간 30% 이상 급감한 것과 비교하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록이다.
나란히 약진하고 있는 두 업체는 2005년 설립된 중국 음향ㆍ영상 전문 업체 부부가오(步步高ㆍBBK)가 모회사다. 애플이 MP3 재생기기인 아이팟을 만들다가 아이폰을 출시했던 것처럼, 부부가오도 앞선 음향 기술을 살려 2002년 휴대폰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2011년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내놓은 브랜드가 비보다. 부부가오는 이에 앞서 2001년 해외 시장을 겨냥한 MP3 브랜드 오포를 내놨다. 그러다 부부가오의 창업 멤버 중 한 명인 토니 첸(陳明永)이 2004년 오포 사업 부문을 분리해 나왔고, 2011년부터 스마트폰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모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비보는 형, 오포는 동생 격으로 통한다.
업계에서는 두 업체가 빠르게 부상할 수 있었던 비결로 음향ㆍ영상 분야 경쟁력과 마케팅을 꼽는다. 무엇보다 부부가오의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에 ‘모방’만을 일삼던 다른 중국 업체들과 차별화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오포는 2012년 세계 첫 500만 화소 전면 카메라를 탑재한 ‘유라이크2’를 내놓았다. 비보도 올해 6기가바이트(GB) 램을 넣은 ‘엑스플레이5’을 선보이는 등 ‘세계 최초’ 수식어를 단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아울러 비보와 오포는 송중기, 슈퍼주니어 등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적극 기용, 온ㆍ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아시아 시장에서 이름을 알려 나가고 있다.
세부적인 전략에선 두 업체의 차이도 보인다. 비보는 80만원 이상의 고가 제품이 주력인 반면 오포는 50만~60만원대의 중가 제품에 주력하고 있다. 또 비보는 부부가오의 강점을 이어 받아 음향 기능에 초점을 맞추지만 오포는 중국 내에서 ‘젊은 여성을 위한 스마트폰’으로 알려질 정도로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한다. 이처럼 같은 곳에서 출발한 두 업체는 전략을 다르게 가져가면서 전 소비자층을 고르게 사로잡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두 토종 업체들의 기세에 밀린 삼성전자는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중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분기 판매량이 5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2011년부터 중국에서 줄곧 1위를 달리다 2014년 3분기 처음으로 샤오미에 정상을 내줬고 이후 애플, 화웨이, 비보, 오포에 차례로 따라 잡혀 결국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더구나 화웨이는 최근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까지 제기한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다수의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로부터 협공을 당하고 있는 꼴이다. 스마트폰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에 이어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내놓는 비보와 오포가 세계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의 실질적인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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